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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한자와 나오키 半沢直樹 1 - 당한만큼 갚아 준다> 이케이도 준 池井戸潤/ 오래 기다린 일본 사회파 소설의 걸작

" 당한만큼 갚아 준다. "

 

*책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블 경제의 종말과 정글 속에 던져진 은행원들

1980년대 중반, 엔고의 시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신호탄으로 일본 경제는 역사상 유례없는 대호황의 시대를 맞게 된다. 주가는 폭등하고, 부동산 가격도 따라 올랐다. 한때 도쿄의 땅을 다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고 했고, 세계 50대 기업 중에서 일본기업이 30개가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할 사람은 부족하고 인재는 더욱 부족했다. 이른바 일본의 버블경제기이다.

 

한자와 나오키도 버블 경제기에 몸값이 최고인 상태에서 '산업중앙은행'에 입사한다. 은행으로부터 인재로 인정받은 순간, 다른 은행이나 회사에 뺏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받는다. 버블 경제의 시대, 한자와 나오키는 은행 입장에서 다른 곳에 빼앗길 수 없는 뛰어난 인재였다.

 

경기가 언제나 호황일 수는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인 대호황기는 그리 길지 않았고,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본 경제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히고 말았다. 산업 전반이 침체에 빠졌고, 한자와 나오키가 근무하고 있는 '산업중앙은행'은 '도쿄제일은행'과 합병하여 초대형 은행인 메가뱅크가 되었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한자와 나오키는 그 와중에 지뢰를 밟아 버렸고, <한자와 나오키>는 5억엔이라는 엄청난 돈을 부실대출한 한자와 나오키의 생존을 위한 분투기이다.

이케이도 준 池井戸潤 1963 ~ . 일본의 소설가.

정글과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 초대형 은행의 한 지점에서 벌어지는 은행원간 암투를 다루는 소설이다. 일본소설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굉장히 많아서 다양한 소설들이 번역되서 소개되고 있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많이 올라 있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내가 느끼는 일본소설은..
1. 만화책을 소설로 옮긴 것 같다.
2. 추리소설이 많고 극적 반전에 집착을 많이 한다.
3. 가볍고 읽기 쉽고 소시민적이다.
4. 초반에 특이한(또는 엽기적인) 소재로 몰입감이 대단하다.
5.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정도일 것 같다. 심심풀이로 손에 잡고 읽으면 시간은 잘 가는데 마지막에 실망을 하고 읽은 책 목록에 꼭 남길 필요는 없는 그런 책들이 많다. 2할 타율 정도 되는 것 같다.

 

<한자와 나오키>는 지금까지 읽어 온 일본소설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본격적으로 일본의 최근 사회 분위기(그래도 나온지 15년이나 지났다), 그 중에서도 경제를 많이 반영하고 있고 직장에서 흔히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사건들이 내용을 이룬다. 특히, '부하의 공은 상사의 공, 상사의 잘못은 부하의 잘못'이라는 말로 대변되듯이 부하의 공적을 상사가 가로채고 상사의 잘못을 부하가 뒤집어쓰는 은행의 모습은 우리나라 직장인들도 읽다 보면 공감을 할 수 있다.

 

정글과 같은 직장, 먹느냐 먹히느냐.

위기에 처한 한자와 나오키는 이제 5억엔을 회수하지 못하면 은행에서 낙오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이라고 해서 낙오한 직장인의 삶이 평탄할 리가 없다. 극한까지 몰린 한자와 나오키는 분식회계로 회사의 자금사정을 속여서 대출을 받은 히가시다 미쓰루 사장을 찾아 5억엔의 일부라도 찾으려고 한다. 나오키 과장이 이렇게 애쓰고 있는 동안 지점장인 아사노 다다스는 5억엔 부실대출 책임을 한자와 나오키에게 떠넘길 생각만 한다. 국세국에서는 한자와 나오키보다 먼저 히가시다 미쓰루를 찾아 국세를 받아 내려고 한다.

 

3중고에 시달리면서도 한자와 나오키는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합법적인 방법만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편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 어차피 잡아 먹지 않으면 잡아 먹히게 되어 있으니 이것저것 가릴 계재가 아니다. 마지막 결말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불법을 눈감아 주기까지 한다. 한자와 나오키는 정의로운 인물은 아니다. 단지, 적들보다 덜 불법적인 사람일 뿐이고, 이 책의 주인공이여서 독자가 감정이입을 한 사람일 뿐이다. 새가슴을 지닌 일반적인 직장인과는 달리 직장내의 정치와 음모에 탁월한 점이 있다. 그래서 통쾌하다.

원작은 2004년에 발간되었다. 한국판에서 첫번째 책은 부제가 드라마로 유명한 대사인 '당한만큼 갚아준다'로 정해졌지만, 원작의 부제는 '우리들, 버블입행조'(버블시대에 은행에 입사한 직원)이다.

통쾌한 결말, 이제 다음 이야기로..

한자와 나오키는 결국 불법대출 사건을 해결한다. 사건의 전말은 처음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 히가시다 미쓰루 사장을 찾기 위해 애쓰던 중 은행장과 히가시다 사장이 중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큰 불법 가운데 작은 불법이 숨어 있었다. 히가시다가 숨겨 놓은 재산을 탈탈 털어서 은행의 대출금을 갚고 덤으로 한자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아사노 지점장의 약점까지 잡아서 자신이 원하는대로 인사이동을 요구한다. 속이 시원해지는 결말이다.

 

와중에 아사노의 부인이 우연히 지점장실에서 만난 한자와에게 아사노를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조아리는 장면은 마음을 좀 짠하게 한다. 아사노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내와 딸을 사랑하고 가정을 지키려는 모습과 그 틈을 노려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한자와의 모습은 묘하게 선과 악을 뒤틀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애초에 한자와라고 해서 꼭 선은 아니고 아사노라고 해서 악은 아니다. 그저 자신이 있는 처지에서 어떻게 상대방을 누르고 올라갈까 고민을 하던 두 짐승의 싸움일 뿐이었다. 그냥 한자와 나오키 과장이 우리 편일 뿐이다.

 

2013년 3/4분기 TBS 드라마에서 방영된 <한자와 나오키>. 주인공인 사카이 마사토가 열연했고,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엄청난 화제와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아 원작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았다.

★★★★☆

소설 <한자와 나오키>는 우리나라에는 같은 이름의 일본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함께 유명해 졌다. 드라마는 소설의 1부와 2부를 다뤘고, 소설은 4부까지 출간되어서 드라마의 뒷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찾아 봤지만 소설을 찾을 수 없어서 아쉬워 했다.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전권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고, 기쁘게도 서평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일찍 읽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내년 2/4분기에는 <한자와 나오키>의 3부와 4부를 다루는 드라마 시즌2가 방영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것도 정말 반갑다.

 

굉장히 재미있다. 은행시스템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많고, 일본은행 시스템은 우리나라와는 또 다를테니 익숙하지 않은 용어도 있다. 그래도 조금 어려운 용어는 책 속에서 자세히 설명을 해 놓아서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책이다.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