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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 정말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여도 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여고 교사

마에시마는 세이카 사립 여자고등학교의 수학교사이며 양궁부 고문이다. 그저 평범한 교사일 뿐인 마에시마는 얼마전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등을 떠밀어 열차가 들어오는 동안 철로에 떨어질 뻔 한 적도 있다. 수영을 하는 동안에 누군가 물속에 전기가 흐르도록 멀티 탭을 설치해 놓기도 했다. 급기야는 위에서 떨어지는 제라늄 화분을 가까스로 피해 위험을 벗어나기도 했다. 교장에게 이런 사정을 얘기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그저 시끄러운 일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우연일지도 모른다고 억지로 마음을 추스리는 마에시마.

 

그런데 마에시마를 따라다니던 죽음의 그림자는 엉뚱하게도 학생지도부장인 무라하시를 덮친다. 무라하시가 학교 외진 곳에 있는 탈의실에서 청산가리를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된다. 학교는 발칵 뒤집히고 운나쁘게 양궁부장인 케이와 함께 시체를 처음 발견한 마에시마는 오타니 형사에게 시달린다. 첫 용의자는 다카하라 요코. 하지만 밀실 트릭이 깨지면서 요코의 용의점은 사라진다. 과연 무라하시는 누가 죽인 것일까?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 중 한 명.

베스트셀러 작가의 첫 수상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첫 수상작이며 전업작가로 전향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된 소설이다. '에도가와 란포상'은 일본의 추리소설가인 에도가와 란포를 기념하기 위해서 제정된 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 31회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쓰는 다작작가이지만 이때만해도 아직은 미래가 불확실한 애송이 작가였을 게이고의 실력을 볼 수 있다.

 

무라하시 사후, 사건을 조하사던 오타니 형사는 요코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조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머리좋은 호조 마사미의 추리에 의해서 요코는 혐의를 벗고 살인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며칠이 지나 학교는 안정을 되찾고 예정되어 있던 체육대회가 열린다.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가장 행렬. 마에시마는 원래 양궁부 가장 행렬에서 술취한 삐에로로 분장한 후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역할을 몰래 바꾸면 재미있을 거라는 육상부 고문, 다케이 선생의 제안에 따라 아무도 모르게 역할을 바꾼다. 그런데 소품인 술병에 있는 물을 마신 다케이가 갑자기 숨지고 그 원인은 술병 속에 있던 청산가리 때문으로 밝혀진다. 역할을 바꾸지 않았으면 마에시마가 살해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마에시마를 노리는 것일까? 마에시마는 또다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건의 배경은 여자 고등학교. 여고생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썼다..고 생각하지만 여고생의 마음을 들여다 본 적이 없어서 여고생도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기본에 충실한 추리소설

벌써 30년도 전에 쓴 소설이다. 학교 환경도 현재와 다를 테고 휴대폰같은 학생들의 필수품도 없을 때다. 하지만 읽는 동안 오래된 소설을 읽는 것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초창기의 소설이라고 해서 재미가 떨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 (왠지 급하게 쓴 듯한) 단편집이나 재미없는 장편소설보다도 훨씬 낫다. 밀실을 둘러싼 트릭도 좋고 살해 동기를 숨기기 위해서 실제 살해목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노리는 것같은 트릭도 좋았다. 추리소설답게 마지막 반전과 추리과정도 매끄럽다. 최근 게이고의 소설을 보면 설정이 억지스럽거나 너무 전문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든 작품도 많은데 그에 비하면 오히려 추리소설을 읽는 맛은 더 나은 것 같다. 

 

살인을 하는 동기가 신선하다. 어떻게 이런 일로 살인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여고생의 수치심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한다. 하긴 최근 '명탐정 코난'의 어처구니 없는 살인 이유에 비하면 훨씬 나아 보인다. 마에시마 아내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들어간 것은 아무리 봐도 쓸데없다. 아내를 페이크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설정했다고 하기엔 너무 등장 장면이 적어서 전체 내용에 녹아들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뜬금없게도 책 마지막에 아내와 불륜을 일으킨 직장상사에 의해 마에시마가 살해된다. 전체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어처구니없는 마지막 장면이다. 소설 전체와 전혀 상관이 없으니 결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충격적인 마지막이지만 책을 읽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을 빠졌어야 할 부분.

내가 본 책은 이것인데 절판되고 최근에 소미미디어에서 새로 출간됐다. 그러고 보니 번역한 사람도 달라졌다. 내용도 바뀐 건 아니겠지?

★★★★

재미있고 깔끔하다. 마에시마 아내 부분이 쓸데없이 추가되어 눈에 거슬리지만 그 부분만 빼면 괜찮다. 남자면서도 여고생의 모습과 감정을 세심하게 살핀 후 소재로 삼은 것도 신선하다. 게이고가 이름을 떨친 첫 소설이므로 게이고의 팬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