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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 살인사건 후 각자 살 길을 찾는 인간군상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딜리터, 죽음 이후를 책임지는 탐정

구동치는 딜리터(deleter)이다. 탐정이기도 하다. 딜리터는 의뢰인이 꼭 없애고 싶은 물건을 죽기 전에 미리 부탁해 놓으면 의뢰인이 죽은 후 그것들을 모두 찾아서 없애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의뢰인이 없애고 싶은 것도 가지가지. 사진이 될 수도 있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일 수도 있다. 문서가 가장 많고 일기장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자료들을 없애려면 때로는 무단침입도 해야 하고 물건을 훔치기도 해야 한다. 물론 불법이다. 마치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돈되는 일이라면 불법적인 일들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구동치에게 의뢰한 사람 중에 배동훈이라는 사람이 죽었다. 그가 없애달라고 의뢰한 것은 네 가지. 그 중에 세 개는 찾아서 없앴는데 태블릿 PC 하나를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 태블릿 PC를 찾는 와중에 구동치는 큼지막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김중혁. 1971 ~ . 한국의 소설가.

잘 모르는 유명작가

처음 읽는 김중혁의 소설이다. 김중혁은 가끔 들었던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이름을 들어 귀에 익숙하다. 소설가라는 것만 알고 있고 그가 쓴 소설을 읽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프로필을 살펴 보니 굵직한 문학상을 여러차례 수상한 실력있고 유명한 작가다. 내가 우리나라 문학에 대해서 너무 관심이 없다는 걸 잠깐 반성하고.. 그러니까 김중혁은 내가 잘 모르는 유명한 작가이다. 이 책을 집어든 것도 작가의 이름 때문이다. 그나마 귀에 익숙한 이름을 가진 소설가의 책도 손에 잡기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작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소설에 좀더 관심을 갖자고 다짐 한 번 한다.

 

큼큼한 냄새가 흐르는 군상극

처음엔 추리소설인가 했다. 형사도 나오고 추리하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딱히 추리가 주가 되지는 않는다. 본격적인 수사물도 아니다. 사립탐정이 등장하는데 우리나라는 사립탐정이 합법적인 직업도 아니다. 정확히 정체를 밝히기 쉽지 않은 그저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뒷통수를 치는 군상극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그 중에 주인공인 구동치만이 가장 신뢰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척 한다. 하지만 구동치가 없앨 것을 요청받은 물품을 없애지 않고 사무실에 보관하는 것만 하더라도 의뢰인의 당부를 어긴 것이니 그다지 믿을만한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마지막에도 이영민과 천일수 사장의 뒷통수를 제대로 후려쳐 버린다.

 

여러 인간 군상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움직이다가 충돌하는 모습을 보면 소설 자체가 상쾌함과는 거리가 있고 좀 씁쓸하다. 씁쓸한 분위기를 더 가중시키는 건 작품 전체에 흐르는 냄새. 구동치의 사무실이 있는 악어빌딩에서는 특유의 큼큼한 냄새가 있다. 그리고 구동치는 자신이 가는 모든 장소를 냄새로 판단한다. 별로 좋은 냄새가 나는 곳이 없으니 찝찝한 느낌이 소설 전체에 흐르고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책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재미있는데 좀 허전하다

전체적으로 이미지도 선명하고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전개가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선배 형사인 김인천과 구동치의 관계가 그렇다. 김인천의 죽음이 구동치가 하던 일까지 그만 둘 정도로 충격을 준 사건이라는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 처음 김인천이 나올 때는 그저 구동치가 예전에 형사 생활할 때 동료로서 딜리터 일을 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악어와 악어새 사이 정도로 느껴졌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 설득력 있는 정황이 부족했던 것 같다. 소설 초반에 무엇보다 냉정하고 원칙주의자였던 구동치가 소설 후반에서는 감정적으로 변하는 모습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등장인물에 있어서도 소설 초반부터 나와서 작품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 같았던 작가와 정소윤이 어느 순간 공기가 되어 버린 것도 아쉽다. 작가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소윤은 활용할 여지가 많아 보였는데 구동치와 정소윤의 갈등이 마지막에 아무 것도 아닌 양 해결되어 버렸다. 마치 소설쓰는 동안 잊고 있다가 마지막에 생각나서 미안한 마음에 등장시켜서 결말지은 것 같은 느낌이다.

★★★☆

작가는 별것 아닌 것 같던 사망사건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면서 그에 연관된 인물들이 우왕자왕하고 나름대로 살 길을 찾는 소설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일파만파까지는 아니고 일파십파 정도에서 파도가 멈춘 것 같아서 아쉽다.

 

재미있게 읽었으니 비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하지는 않다. 이 책이 김중혁 작가의 대표작은 아닌 것 같고.. 다른 소설을 찾아서 읽어 본 후에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소설이 나한테 맞는지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