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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아르테미스 Artemis> 앤디 위어 Andy Weir /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려든 천재

밀수가 주업인 하층민,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다

가까운 미래의 달. 달에는 버블이라는 구 모양의 거주지가 다섯 개 있다. 우리의 주인공 재즈 바샤라는 그 중 콘래드 버블의 지하 15층에 살고 있다. 방이라고 해 봐야 침상 하나 있고 천장은 침상 위 1m. 꼼짝하기도 힘든 답답한 캡슐 주택이다. 그의 꿈은 달의 관광안내원이라고 할 수 있는 EVA 길드 시험에 합격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벌면 거실과 침실, 화장실에 개인 샤워실이 딸린 멋진 콘도를 얻을 생각이다. 공동시설을 사용하는데 진력이 났기 때문이다. 현재 직업은 포터, 배달원이다. 항상 합법적인 것만 배달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된다면 조금쯤은 배달해서는 안될 물건들도 배달한다. 재즈 바샤라는 돈이 필요한 하층민이다.

 

EVA 길드 시험에 떨어지고 의기소침해 있던 재즈는 달에서 가장 큰 부자인 트론 란비크로로부터 100만 슬러그(달의 화폐 단위)짜리 제안을 받는다. 재즈가 원하는 집을 사고도 남을만큼 충분한 돈이다. 트론의 제안은 달에 산소를 제공하는 독점기업인 산체스의 수확기 4대를 파괴해 달라는 것이다. 수확기가 모두 파괴되면 산체스는 달에 산소를 제공할 수 없게 되고, 트론은 그틈에 비축해 놓은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큰 이득을 취할 생각이다. 물론, 들통나면 모든 책임은 재즈의 몫이다. 재즈는 위험한 거래 제안을 받아 들이고, 차근차근 수확기를 파괴하기 위한 계획을 짠다.

 

달의 거주지역. 버블이 다섯 개인데 구 모양으로 지상에 반구, 지하에 반구가 있다.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뛰어난 달의 일상 묘사

마션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앤디 위어가 쓴 두 번째 소설이다. 전작인 마션은 과학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소설 속에 녹여내서 독자들이 지적인 쾌감을 얻을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다. 모래폭풍 때문에 화성에 남겨진 주인공이 자신의 과학지식을 충분히 활용하여 결국은 지구로 귀환하게 되는 내용이다. 제목 자체가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달에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작가는 가까운 미래, 달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주지를 만들면 어떤 모습일지 열심히 상상을 하고 그려낸다. 지구에서 사는 것이 당연한 독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달에 사는 일상을 과학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달에서는 무언가를 건설한다는 자체가 큰 돈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도로가 없다.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한 계단의 높이는 50cm나 된다. 그렇게 높은 계단을 15층씩이나 올라가도 숨이 차지 않는다. 달의 먼지는 굉장히 거칠다. 먼지라기보다는 돌가루에 가깝다. 기상현상이 없어서 풍화작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앤디 위어는 우리 지구인들은 평소에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지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소소한 지적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아폴로 11호가 착륙했던 지점. 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다.

그럴싸한 아이디어, 달의 화폐 슬러그

소설 속에서 달의 화폐는 슬러그 slug이다. 난 소설 속에서 등장한 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이 아이디어가 가장 흥미로웠다. 슬러그는 연착륙 soft-landed gram을 줄인 말로 S. L. G.인데 슬러그라고 부른다. 슬러그는 1그램의 화물을 지구에서 달로 옮길 수 있는 선불 서비스 신용점수이다. 즉, 1그램을 옮길 수 있는 권리가 1슬러그인 셈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국가가 아닌 달에서는 화폐를 발행할 수가 없다. 화물운송은 달에서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생활서비스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화폐로 대체하고 있다. 가상화폐와 닮아 있으면서도 실물서비스가 밑받침되기 때문에 화폐로서 제격이다.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달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천체이기 때문에 인류가 거주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나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경제적인 문제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대는 좋았다. 하지만..

마션을 기억하면서 잔뜩 기대를 하면서 읽어나갔다. 소설의 도입부분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앤디 위어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달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 문제는 설정이 아닌 내용에 있었다. 재즈가 트론을 만나 달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지극히 불법적인 거래를 승낙하는 것은 돈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 보자. 4대의 수확기 중에 한 대를 파괴하지 못하고 트론이 산체스의 사주에 의해 살해 당한 후부터 소설은 급작스럽게 변한다. 찌질함의 극치를 달리던 재즈는 순식간에 천재가 되어 버린다. 재즈의 주변인물들은 이전의 관계가 어땠는지와 상관없이 재즈를 힘껏 돕는다. 진 추가 묵고 있는 호텔문을 따는 것도 운이 너무 좋다. 그 안에 있는 전문적인 암살자를 격퇴하는 장면도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금고를 여는 장면에서는 우연과 천재적인 직감까지 모두 총동원된다. 못하는게 없는 천재적인 두뇌 + 하늘이 내린 운 + 기다렸다는 듯이 도와주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재즈는 목숨을 걸고 달을 구한 영웅이 되고, 이전에 행했던 사악한 죄는 사함을 받는다. 뭐야 이게!

 

앤디 위어. 1972년생. 마션으로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아르테미스는 두 번째 소설이다.

장점은 줄어들고 단점은 부각되다

어쩔 수 없다. 아르테미스는 마션과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소설이다. 마션이 인기있었던 이유는 흔히 말하는 과학 덕후가 자신이 가진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화성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설득력있게 묘사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션에서는 과학 지식이 소설의 주제였고 소설의 내용이었다. 반면에 아르테미스는 과학 지식이 소설의 소재일 뿐이다. 소설 전반에 걸쳐 표현되는 과학 지식은 소설의 분위기와 소소한 즐거움을 주기는 하지만 주된 요소가 아니다. 마션은 과학 지식을 빼면 소설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르테미스는 과학지식을 빼도 소설이 성립한다. 적당히 배경을 지구로 바꾸고 과학지식을 빼 버려도 소설이 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마션이 굉장히 큰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이야기가 굉장히 뛰어난 소설은 아니었다. 전형적인 로빈슨 크루소 형식의 표류기였다. 앤디 위어는 직업적인 소설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플롯보다는 과학지식을 곳곳에 잘 배치하여 흥미로운 소설을 써낼 수 있었다. 아르테미스에서는 앤디 위어가 달라졌다. 전업작가로 변신했고, 전체적인 플롯과 구성을 생각하면서 책을 썼다. 아마도 소설의 영화화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소설가라면 소설가답게 멋진 스토리를 써내려 가야 한다. 영화화할 생각이 있다면 스펙타클한 장면도 곳곳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앤디 위어는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장점이 있는 작가는 아니다. 아르테미스에서는 마션에서 볼 수 있었던 장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마션에서 과학지식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단점이 떠올라 버렸다.

 

제목인 아르테미스는 그리스신화에서 달의 여신을 가리키며, 로마신화에서는 디아나가 같은 신이다. 영어로는 다이아나라고 부른다.

재미없는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소설 전반부는 설정을 잘 짜놓은 덕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트론이 죽고나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더 몰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때부터 소설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뛰어난 천재 SF소설가로 데뷔한 앤디 위어는 이제 평범한 우주활극 소설가가 되어 버렸다. 아르테미스는 마션의 후광을 받아 인기가 있을 수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장담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 다음 소설이 나온다면 마션같은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화성을 쓰고, 달을 썼으니 다음은.. 유로파나 엔켈라두스 정도 되지 않을까?

 

마션 정도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설정이 뛰어나기 때문에 초반은 읽을만하다. 뒤로 갈수록 지루하고 개연성이 떨어진다. 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든다.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는 애매하다. 그렇다고 읽지 말라고 뜯어 말릴 정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