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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 자강두천의 멋진 두뇌 싸움

* 책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우발적인 살인을 한 모녀, 그들을 돕는 수학교사

수학교사인 이시가미는 옆방에 살고 있는 야스코라는 여자에게 마음이 있다. 야스코는 미사토라는 중학생 딸이 있는 이혼녀이지만 예쁘고 사랑스럽다. 어느날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야스코의 집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난다.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어 벨을 누르니 야스코가 나온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없다고 한다. 머리가 흐트러지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방안에서 담배냄새가 나는데 담배를 피울 만한 사람의 신발이 없다. 그리고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고다스 안에 누군가 숨어 있는, 사실은 숨겨져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사람을 죽였구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야스코의 말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옆집의 모녀는 지금 큰 위험에 빠졌다. 큰 사건을 목격하고 나니 이시가미는 오히려 냉정해지고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야스코를 도와줘야겠어'. 결심을 한 이시가미는 야스코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부인하던 야스코도 침착한 이시가미의 추궁에 살인을 실토하고 만다. 이시가미는 머리를 식히고 사건을 덮을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그동안 두 권을 읽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처음 읽었는데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구성도 좋아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 후 읽은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단편집이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후 찾아 보니 히가시노 게이고는 굉장히 다작을 하는 작가이고, 책의 완성도가 소설 별로 꽤 많이 차이난다는 것 알게 되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게이고의 수많은 소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고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니 기대를 잔뜩하고 읽기 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어설퍼 보이는 트릭, 그런데도 헤매는 경찰

야스코와 그의 딸 미사토가 야스코의 전 남편인 도미가시를 죽이면서 소설이 시작한다. 옆집에 살던 수학교사이면서 수학천재인 이시가미는 우연히 살인사건을 알게 되고 사모하던 모녀를 위해 살인사건을 감출 트릭을 만들어 낸다. 과연 모녀와 한 남자는 끝까지 살인 사건을 숨길 수 있을까? 이 소설의 극적 긴장감의 포인트다.

 

사건이 일어났으니 당연히 경찰이 따라 붙는다. 이시가미가 용의주도하게 트릭을 만들어 놨을 것 같은데 의외로 순식간에 모녀가 바로 용의자로 특정된다. 어설프다. '도대체 무슨 트릭을 썼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곧 잡힐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간다. 그런데 경찰은 이상하게 모녀의 알리바이를 깨지 못한다. 어설픈 트릭에 무능한 경찰의 두뇌싸움인 것 같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최악의 스포일러

사건을 맡은 담당형사인 구사나기에게는 유가와 마나부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테도대학 물리학과 조교수이다. 가끔 풀리지 않는 사건의 조언을 해 주는 친구다. 우연찮게 이시가미와 구사나기, 마나부는 모두 테도대학 동기였고, 마나부는 이시가미와 잘 아는 사이다. 더군다나 마나부는 물리학부에서, 이시가미는 수학에서 천재로 유명했던 친구들이었다. 이제부터 자강두천의 두뇌싸움이 벌어질 것은 자명하다. 원래는 이쯤에서는 도대체 누가 이 두뇌싸움을 이길지 긴장하면서 책을 읽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읽기 전에 알게 되었는데, 형사인 구사나기가 마나부를 부를 때, '갈릴레오'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그 순간, 이 책의 최고의 스포일러에 당하고 말았다. '갈릴레오'는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일본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용의자 X의 헌신>은 갈릴레오가 주인공인 시리즈물 중에 한 편이었다. 갈릴레오는 경찰을 돕는 천재 탐정 포지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모녀와 이시가미의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다. 긴장감의 한 축이 날아가 버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영화화가 많이 되었고, 드라마화도 되었다. 한국에서도 <용의자X>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 졌다. <용의자 X의 헌신>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중의 하나로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에 하나이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고 트릭도 멋지다

많지는 않아도 일본에서 유명한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초반에 몰입감이 굉장히 좋다. <용의자 X의 헌신>도 그렇다. 단지 갈릴레오가 누군지 몰랐더라면 훨씬 긴장감있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그 점은 많이 아쉽다.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의 또다른 특징이 마지막 반전을 너무 신경쓴 나머지 무리하게 끝맺음을 해서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용의자 X의 헌신>은 마지막 트릭까지도 멋지게 배치해 놓아서 결말의 반전도 무릎을 치게 만든다.

 

나는 이시가미에 감정이이입을 해서 읽었는데, 중간에 은혜도 모르고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야스코가 굉장히 싫었고, 갈릴레오가 튀어나오는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야스코에 대해 복수하려고 하는 모습이 좀 이상했는데, 그것까지 계산하고 있었던 이시가의 용의주도함에는 감탄했다. 진심으로 이시가미의 트릭이 성공하길 바랬는데, 갈릴레오의 방해 때문에 실패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이게 다 갈릴레오 때문이다!

 

★★★★☆

만약 갈릴레오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 하긴, 형사 콜롬보가 나온다고 해서 드라마의 긴장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갈릴레오가 이시가미의 트릭을 파헤치는 과정만 봐도 재미있다. 오랜만에 밤새워 읽은 책이다. 앞으로도 재미있다고 하는 게이고의 책을 좀 더 찾아 읽어 볼 생각이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