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밝히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
신을 믿지 않는 천재적인 과학자, 에드먼드 커시가 있다. 이미 젊은 나이에 전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부를 이루었다. 에드먼드 커시는 어느날, 전세계를 향해 도발적인 예고를 한다. 세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를 줄 발표라고 한다. 그리고 발표를 하기 전에 천주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지도자에게 미리 발표할 내용을 비춰 준다. 세 명의 종교 지도자는 경악을 하게 되고,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지도자는 에드먼드 커시가 발표를 하기 전에 미리 본 내용을 누출하여 김을 빼려고 하지만 세 종교 지도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한편, 에드먼드 커시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발표하기 위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통째로 빌리고, 유명한 석학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한다. 그 중에는 커시가 학생시절 수업을 들었던 로버트 랭던 교수가 있다. 서론을 마치고 본 내용을 발표하려는 순간, 커시는 발표회장에 몰래 숨어 들어온 옛 해국 제독 아빌라에게 총을 맞고 사망한다. 행사를 주관하던 미술관장이자 스페인 왕자의 약혼녀인 암브라와 함께 커시가 발표하지 못한 내용을 발표하려는 랭던 교수. 그를 돕는 인공지능 윈스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들을 쫒는 아빌라 제독, 그리고 종교지도자 중에 홀로 살아 남은 발데스피노 주교. 항상 죽도록 고생했던 랭던 교수는 이 틈바구니에서 이번에도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댄 브라운 팬이라면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손에 잡을 소설
댄 브라운의 일곱 번째 소설이면서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처음 등장한 종교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이 다섯 번째로 활약하는 소설이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를 쓴 후 전세계적인 논란과 신드롬을 일으킨 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한다는 믿음이 있는데다가, 평소에 관심이 많은 기호학과 도상학을 소설의 소재로 많이 쓰기도 할 뿐더러, 이미 그의 소설을 다 샀기 때문에 이 책도 어차피 살 거라는 생각에 나오자 바로 사서 읽었다. 그냥 이름만 보고 아무 고민없이 책을 구매하는 작가가 몇 명 있는데, 나에게는 댄 브라운이 그런 작가 중에 한 명이다. 그리고 댄 브라운은 이번에도 나의 기대에 딱 맞는 그만큼의 만족감을 준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오리진은 제목에서 보듯이 '기원'에 관한 책이다. 소설은 계속해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넌 도대체 어디서 온 거야?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책을 읽는 동안, 아직 책 속의 대답이 나오기 전까지 이 질문은 계속된다. 소설 속에서 에드먼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냈고, 발표하려고 한다. 당연하지만 그 기원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그럼 도대체 뭐지? 글을 읽는 동안 도대체 어떤 그럴듯한 결말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대답을 가지고 왔길래, 커시는 그렇게 자신만만했으며, 댄 브라운은 그런 자신만만한 주인공을 만들어 냈는지 궁금하다. 설마, 세상의 기원을 소설 책에서 알 수 있게 되는 걸까?
뛰어난 흡입력, 하지만.. 너무 똑같다
댄 브라운의 소설은 추리스릴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의 흡입력을 지닌다. 두 권 합쳐서 700페이지를 넘는 소설의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 재미있다. 하지만, 너무 똑같다. <<천사와 악마>>부터 시작해서 <<다빈치코드>>, <<로스트심벌>>, <<인페르노>>에 <<오리진>>까지.. 패턴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 패턴을 한 번 보자.
1. 댄 브라운은 어느날 유명한 사람의 초대를 받는다.
2. 사건이 터진다.
3. 로버트 랭던은 유력한 용의자 중에 한 명으로 공권력으로부터 쫒긴다.
4. 게다가 무지막지한 살인자로부터도 쫒긴다.
5. 옆에는 미모의 아름다운 여자 조력자가 있어서 썸은 타지만 연결은 되지 않는다. 딱히 큰 도움도 되지 않는다.
6. 쫒기는 동안 믿을만한 조언자가 있다.
7. 범인은 도와주는 줄 알았던 조언자이다.
오리진 역시 이 패텬을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딱 1권을 다 일고 났을 때,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믿을만한 조언자가 바로 범인이다. 마지막 결말은 정말 내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건 마치 개그콘서트에서 성공한 코너 하나를 짜서 매회마다 상황만 조금씩 바꿔서 같은 웃음 포인트에서 모든 관객들이 함께 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설프게 끌어다 쓰는 과학 + 밑천 다 떨어져 가는 종교기호와 상징
댄 브라운은 가장 가장 멀어 보이는 과학과 종교를 한 소설 안에 녹여내는데 장점이 있다. <<천사와 악마>>에서는 반물질과 함께 일루미나티라는 음모론의 정점에 있는 것 같은 단체, 그리고 멋진 앰비그램이 흥미를 끌었다. <<다빈치 코드>>는 기독교의 온갖 상징과 기호를 있는대로 끌어다 써서 관심을 끌었다. <<오리진>>에서는.. 완성형 인공지능인 윈스턴이 등장하고, 무생물에서 생물이 나타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시뮬레이션의 근거가 되는 양자생물학이 등장한다. 종교적인 음모론의 한 축은 팔마리아 교회가 담당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어설프다. 인공지능은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인데다 유머감각까지 지녔다. 양자생물학은 이제야 태동하는 학문으로 주류에 올라서지도 못했다. 그런데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런 것들을 가져다 쓴다. 대충 과학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지만 너무 황당무계해서 추리스릴러가 판타지 소설이 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제는 끌어다 쓸 종교적인 기호와 상징, 음모론도 다 고갈되어 버린 것 같다. 마지막에는 누명을 쓴 것으로 표현하긴 하지만 엉뚱한 교회를 음모론의 주체로 표현한다. 소재가 고갈된 것을 느꼈는지 오리진에서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이 주 무대로 등장한다. 책만 읽으면 가우디는 종교에 반하는 음흉한 계략을 건축에 적용시킨 사람처럼 느껴진다.
★★★★
불평불만을 털어 놓기는 했지만, 재미있다. 그게 댄 브라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단 책을 집어들면 순식간에 끝까지 읽게 된다. 어설프게 지적인 부분도 건드려 준다. 덕분에 소설을 읽으면서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이름 몇 개를 알게 되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게 됐다. 양자생물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심지어.. 정말 무식한 얘기인 것 같지만.. 스페인이 왕국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로스트 심벌>>을 읽고나서는 이제 댄 브라운 소설은 읽지 말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그러다가도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또 사서 읽고 있다. 이 책도 읽으면서 이제 그만 사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다음 책이 나오면 또 로버트 랭던 교수를 만나고 있을 게 뻔하다.
댄 브라운 소설을 이 책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천사와 악마>> 이후의 소설을 두 편 이상 읽은 사람이라면, 장담하건데 그냥 똑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비슷한 얘기를 별로 읽고 싶지 않다면 패스해도 된다. 팬이라면 포기하고 그냥 읽으면 된다. 만약 이 책을 처음으로 사서 볼 생각이라면 일단 멈추고, 먼저 <<천사와 악마>>와 <<다빈치 코드>>를 먼저 사서 읽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안토니오 가우디라는 건축가는 머릿속에 각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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