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제국이 멸망하고 있다
인류는 이미 우리 은하를 꽉 채우고 있다. 인간이 거주하는 행성은 약 2,500만 여개. 은하계에 퍼져 있는 인구는 모두 400경 명, 4,000,000,000,000,000,000 명이다. 수만년 동안 은하계를 지배하고 있는 은하제국이 모든 인류를 지배하고 있으며, 은하제국의 수도는 트랜터이다.
팔십 평생을 '심리역사학' 연구에 몰두한 해리 셀던은 공공연히 은하제국이 멸망할 것이며 3만년 동안 야만스러운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언(이라기보다는 증명)을 한다. 제국의 불순분자이다. 결국 은하제국의 통치자들은 해리 셀던과 그를 따르는 10만여 명이 넘는 과학자들을 은하 변방에 있는 터미너스라는 불모지로 추방한다. 해리와 추종자들은 터미너스에 정착하여 파운데이션을 세우고 3만 년으로 예상되는 야만의 시대를 1,000년으로 줄이기 위해 세워 놓은 미래 역사의 설계를 진행한다. 장대한 미래 우주역사 대서사시, 파운데이션 시리지의 시작이다.
그 유명한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SF 작가 중 한 명인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SF 시리즈 중 하나인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로봇 시리즈와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원래 세계관이 다른 소설이었는데 나중에 세계관을 하나로 합쳐 버렸으니, 로봇-파운데이션 세계관의 첫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시모프가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감명을 받아 썼다고 한 만큼 <파운데이션>은 은하계의 장대한 미래역사를 다룬다. 관찰자로 등장하는 가알 도닉의 눈으로 바라 본 해리 셀던과 터미너스에 파운데이션이 건설되는 과정이 가장 먼저 흥미롭게 묘사되고, 터미너스로 추방된 후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던 해리 셀던의 예측과 반전이 흥미롭다.
심리역사학, 은하대백과사전.. 이건 페이크다!
심리역사학은 소설 <파운데이션>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의 행동은 추측할 수 없지만 인간을 집단으로 다루면 그 흐름을 파악하고 조정까지 할 수 있다'는 가상의 학문이다. 해리 셀던은 심리역사학의 창시자이며, 일군의 심리역사학자들과 함께 1,000년 후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후 30,000년 동안 지속된다는 것을 증명해 내고 그 기간을 1,000년으로 줄이기 위해서 은하계 변방에 파운데이션을 세운다. 파운데이션의 목적은 인류의 지식을 집대성한 사전인 '은하대백과사전'을 만들어서 인류의 지식을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파운데이션>은 처음 파운데이션을 설립하는 과정을 보여준 후, 파운데이션이 발전해 나가는 역사를 다루는데, 은하대백과사전을 편찬하는 것은 사실상 은하제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페이크였다. 그 사실을 몰랐던 사전 편찬자들은 현실이 흘러가는 것을 제대로 판단하여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 샐버 하딘 시장에 의해서 물러나고 샐버 하딘은 샐던 위기(파운데이션이 처한 큰 위기, 해리 셀던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을 한 방향으로 미리 설계해 놓았다)를 무사히 넘기면서 권력을 잡고, 파운데이션은 차츰 주변 성계를 지배해 나간다.
심리역사학이 멋진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역사의 흐름을 통계학적으로 다룬다는 것과 그 흐름을 컨트롤해서 미래의 방향을 바꾼다는 소설의 아이디어는 정말 멋진 것 같다. 하지만 소설에서 세부적으로 적용할 때, 실제 역사에서는 중요한 순간, 단 몇 사람의 결단에 의해서 해리 셀던이 선택한 방향으로 나간다는 점이 좀 불안하다. 파운데이션의 첫 영웅인 샐버 하딘도 그렇고 이후에 등장하는 호버 말로도 마찬가지인 게, 그 개인들이 적절한 자리에 있어서 적절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면, 혹은 무능력해서 계획을 실패했다면 해리 셀던의 계획은 크게 벗어났을 것이다. 일단 한 번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난 샐던 프로젝트(해리 셀던이 안배해 놓은 미래의 역사)는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으므로 장대한 계획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심리역사학은 통계학적인 사회학이기 때문에 큰 집단을 다룰 때는 유용하겠지만 개인의 심리를 다룰 때는 유용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소설 맨 처음 단 한 사람의 판단을 측정해서 파운데이션의 설립 장소를 터미너스로 예측한 것은 반전으로서는 멋진 장치이지만 심리역사학적인 측면에서 너무 개인의 판단에 도박을 걸었기 때문에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마찬가지 이유로 샐버 하딘이나 호버 말로같은 파운데이션 초기의 지도자들이 굉장히 개인적인 결단에 의해서 셀던 프로젝트를 수호해 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스러워 보인다. (결국 사단이 나고 말긴 하지만..)
★★★★☆
SF 소설을 좋아한다면 아시모프를 모를 수가 없고, 아시모프를 안다면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모를 수가 없다. SF 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인만큼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예전에 9권짜리 책을 읽었는데 개정되어 나온 책을 오래 전에 샀다가 이제서야 새로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산 후에 혹시 <로봇>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 없는지 출판사에 문의를 했는데 별다른 계획은 없는 것 같다. SF 소설이 그렇게 독자층이 넓지 않은 편이라서 출판사에서 쉽게 손대지 못할 것 같기는 하다.
강력히 추천한다. 특히, 언제까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절판된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SF 팬이라면 꼭 전권을 소장해 놓을 것을 권한다. (나왔을 때 사놓지 않아서 후회하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모프의 우주 3부작도 그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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