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
게임이론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여러 책을 읽어 봤다. 어릴 때부터 뭔가 대단한 진리가 게임이론 속에 들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게임이론에 밝으면 사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게임이론을 좀 체계적으로 알기 위해 들었던 인터넷의 강의는 듣기 힘들 정도로 지루했다. 복잡한 수식이나 표가 잔뜩 들어간 책도 읽기 귀찮았다. 물론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지식은 사상누각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내가 경제학자나 사회학자가 될 건 아니니까 단편적인 지식을 남들보다 조금 많이 알고 이해하는 정도라면 충분해 보인다. 《도해 게임이론》은 그런 내 필요에 잘 맞는 책이다. '그림으로 이해하는 게임이론'.. 참 매력적이다 하지만 미리 얘기하자면 겨우 200페이지 남짓, 절반이 그림과 도표인 이 책은 생각만큼 만만한 책이 아니다.
그림으로 풀어 설명하는 게임이론
이 책은 AK Trivia Book 시리즈 중에 한 권으로, 나는 이 시리즈 책이 몇 권 있다. 잡스러워 보이는 서브컬쳐 분야의 책들이 대부분이라서 《도해 게임이론》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표지도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고 별로 얻을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의외로 《도해 게임이론》은 굉장히 충실한 게임이론 책이다. 본격적인 강의서적도 아니고 가볍게 읽을 책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는데 일부분이긴 하지만 '기본 개론 + 일부 심화 학습' 정도 역할을 충분히 한다.
책은 왼쪽에 게임이론에 대한 지식 + 오른쪽에 지식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도해'라는 것이 게임이론에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은게, 게임이론을 설명하려고 하면 개인이 선택하는 전략을 표로 작성하여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 써 있는 것을 도표로 읽으면서 찬찬히 보다 보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내쉬 균형, 순차적 게임, 역진적 귀납법
그동안 각주에 해당하는 게임이론에 관한 책만을 읽어 왔다. 게임이론 전반을 훑어보지 않은 것인데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비어있는 구석이 많다. 그런데 처음 우습게 생각한 《도해 게임이론》을 읽으면서 내가 비워 놓은 곳이 어떤 부분이고 무엇을 더 이해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이 게임이론을 모두 설명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역시 저자가 관심을 가진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집중해서 비어 있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해 게임이론》의 저자는 특히 순차적 게임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관심있던 것은 죄수의 딜레마같은 동시게임이었는데 이 책은 게임이론에 대한 나의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었다. 순차적 게임에서 최적의 해를 찾기 위해 수행하는 '역진적 귀납법'은 그동안 어렴풋이 퀴즈문제에서 접해보기는 했지만 이 책에서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깨달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순차적 게임에서 내쉬균형을 찾고 그 과정에서 경제학의 이슈를 게임이론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도해 게임이론》이 순차적 게임에서 중점을 두고 설명하는 것은 내쉬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다. 내쉬균형은 게임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게임 당사자들의 이익이 최대화되어서 전략을 바꾸지 않는 고정전략이라고 대충 이해하면 된다. 《도해 게임이론》에서는 기본 정보만 가지고 내쉬 균형을 찾는 방법으로부터 시작해서 확률에 의해서 찾는 법, 정보가 없을 때 내쉬균형을 찾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 인센티브, 신호보내기 게임 등 경제학의 주요 논제들을 게임이론으로 설명하고 그 해법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가정에 의해 제시된 간단한 숫자와 표를 주고 설명을 하는데 대충 봐서는 안되고 꼼꼼하게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이게 기본적인 내용이라서 이해가 되지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만만치 않겠다는 느낌이다. 도표를 보다 보면 수학공부하는 것 같다.
생각보다는 만만치 않다
겨우 200 페이지를 넘는 책이고 그나마 한쪽은 설명, 다른 한쪽은 그림 및 도표이기 때문에 굉장히 짧은 책이다. 하지만 이 100여 페이지의 설명이 처음 게임이론을 보는 사람에게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차근차근 따라가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연속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나 베이지언 내쉬균형같은 개념은 밑바탕이 되는 지식이 없으면 몇 페이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해서 여러가지 게임이론의 이슈를 살필 수 있는 것은 좋은 점이다.
번역의 아쉬움
일본학자가 쓴 이론서적을 읽을 때, 번역자가 그 분야에 대해 지식이 부족할 경우 용어 번역이나 이론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일본어 한자를 그대로 한글로 읽기만 한다고 번역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후통첩게임'은 책 속 96페이지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처음 봤다. 그리고 138 페이지에서 할인율 설명할 때 '할인율이 낮으면'은 거꾸로 생각한 듯하다. D=0.8을 할인율이 크고 D=0.5가 할인율이 작다고 설명하는데 0.8, 0.5가 남는 가치이므로 0.8이 할인율이 작은 것이고 0.5가 할인율이 큰 것이다. 따라서 '할인율이 작으면 장기간 교섭을 계속하면 손실이 작다'고 하는게 맞는 것 같은데, 이게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법이 다른 것인가 싶기도 하고 번역자가 잘못 번역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설명이 애매해서 이후 할인율 관련 설명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추측으로는 번역자가 게임이론과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따로 감수를 받은 것 같지도 않아서 중요한 부분 용어와 이론에 오류가 생긴 점은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
게임이론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특히 도표를 꼼꼼히 살펴 보면서 읽으면 내쉬균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론 전반을 설명한다고 하기는 힘들다. '순차적 게임에서 수학적 방법으로 내쉬균형 찾기'에 특화되어 있는 책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번역이 좋지 않아서 기존 게임이론 지식을 어느 정도 동원해서 용어와 이론을 조금씩 바꿔 가며 읽어야 한다는 점은 썩 좋지 않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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