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아직은 어린 학문
행동경제학에 대한 책들은 그동안 꽤 많이 읽었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 하는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절망하다가 새롭게 번역한 책이 좋다고 해서 읽으려고 사놓고 대기 중이다. 최근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탈러의 책도 여러 권 사서 읽었고,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거시경제학을 설명했다고 하는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실러의 《야성적 충동》도 찾아 읽어 봤다. 경제학은 원래 큰 관심이 없었는데 행동경제학에 흥미가 돋아서 오히려 거꾸로 경제학 전반에 관심이 많아졌다.
행동경제학은 연구한지 오래되지 않은 학문이라서 각론은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은 총체적인 학문으로 정립되지는 않은 것 같다. 개별 학자가 연구한 분야가 비온 후 죽순 올라오듯 쑥쑥 치고 올라와 거대한 대나무가 되고는 있지만 아직 숲을 이루지 못한 느낌이다. 어쩌면 행동심리학을 경제학에 적용한 행동경제학은 원래부터 그럴 수 밖에 없는 학문인지도 모르겠다.
저명한 경제학자가 쓴 행태경제학 입문서
행동경제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 보고 싶어서 개괄서를 찾던 중 일본 학자인 도노모 모리오가 지은 《행동경제학》이 있었다. 그 외에 딱히 맘에 드는 책이 없었는데, 경제학 서적을 뒤적이던 중 이준구 교수를 알게 됐고, 그의 저작을 살펴 보던 중 행동경제학 관련 도서를 낸 적이 있는 것을 알았다. 개정판까지 나왔으니 꽤 오래된 책인데 왜 눈에 띄지 않았지? 일단 제목이 《인간의 경제학》이고 이준구 교수는 행동경제학을 '행태경제학'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눈에 검색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경제학에는 전혀 문외한인 입장에서 이준구 교수라는 분도 잘 모르니 내 눈에 띌 리 없는 책이다. 궁금증에 사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쉽다
책을 읽기 전에 이준구 교수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굉장히 유명한 경제학자이고, 경제학원론 등 수많은 책을 쓴 사람이다. 예전에 들었던 이해하기 힘들었던 경제학 수업을 생각하면서 긴장을 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경제학》은 굉장히 쉬운 책이기 때문이다. 그냥 좀 쉬운 책이 아니라 지금까지 읽었던 행동경제학 관련 책 중에서 가장 쉬운 책이다. 해외의 행동경제학자의 저서들은 굉장히 신경을 써서 공들여 읽어야 했는데, 《인간의 경제학》은 출퇴근 시간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다. 잘 이해되지 않던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어 놓았고 실례도 풍부하다. 개별적으로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개념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번역이 아니라서 문장도 이해하기 쉬웠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굉장히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 여담으로 이 책을 읽은 후, 경제학 책도 쉽게 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동안 사려고 마음만 먹고 있었던 경제학 원론 책을 한 권 샀다. 물론 이준구 교수 공저.
행동경제학 전반을 정리해 놓았다
《인간의 경제학》은 행동경제학에 대해서 연구한 책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여러가지 이슈와 아이디어를 정리해 놓은 책이다. 저자가 애초에 행동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책에서 밝혔듯이 다른 분야에 비해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독자적으로 행동경제학에 대해 연구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특히, 행동경제학을 연구하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행동심리학 연구를 노교수가 할 수는 없었을 테니 이 책은 태생적으로 종합·정리·소개하는 책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경제학》은 종합해서 정리한 후 소개하는 과정이 정말 잘되어 있다. 그동안 읽어왔던 행동경제학 책들과 비교해 봐도 이 책만큼 행동경제학을 잘 정리해 놓은 책을 보지 못했다. 기본적인 행동경제학의 개념과 용어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 다루었고,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중요한 실험들도 충실하게 다루었다. 따라서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행동경제학 전반에 대한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행동경제학 책을 딱 한 권만 추천하라고 하면 이 책을 권하겠다.
다 좋은데..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서술의 태도이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다른 연구자의 연구성과를 '종합'해서 쓴 책이다. 1차 저작물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물론 책 말미에 출처를 충실히 밝혀 놓긴 했지만 본문 내에서도 '실험에 의하면'보다는 '행동경제학자 누구누구의 실험에 의하면'처럼 읽는 사람이 이론의 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단정적인 서술표현도 많이 나왔는데, 1. 저자가 직적 실험해서 확인한 것이 아니며, 2. 행동경제학이 아직은 정립되지 않은 학문이라는 점에서 과하게 단정적인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
행동경제학을 빨리 이해하기 위해서 단 한 권을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후에 행동경제학 전반에서 이슈가 되는 개념을 이해한 후 개별 학자의 책으로 범위를 넓혀 나가면 행동경제학을 이해하는데 최고의 방법이 될 것 같다. 행동경제학을 처음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behavioral economics 행동경제학? 행태경제학?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행동경제학이라는 용어보다 행태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처음 행동경제학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어차피 번역이지만 도대체 어떤 이유로 학문의 이름이 저렇게 되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어를 보면 어째서 그런 명칭이 되었는지 이해는 되지만 나는 적어도 용어 문제에서만큼은 이준구 교수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미 행동경제학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가 주장을 한다고 해도 행태경제학으로 바뀌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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