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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영화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 일본을 향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 애니메이션 감독

도쿄로 가출한 소년과 맑음여자

외딴 섬, 집에서 도쿄로 가출한 호다카. 어째서 가출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답답했을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대도시 도쿄의 삶은 열여섯 소년이 버텨내기엔 만만치 않다. 결국 배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스가에게 신세를 진다. 스가는 오컬트 잡지를 발행하는 2인회사의 사장. 호다카가 맡게 된 임무는 인터넷에서 떠들썩한 '맑음 여자'를 찾는 것이다. '맑음여자'는 비를 멈추고 맑은 날씨를 불러 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참, 미리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영화 속 도쿄는 항상 비가 내리고 있다.

 

오컬트 잡지답게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내리는 스가. 하지만 놀랍게도 '맑음아이'가 실제로 있다. 그 여자는 호다카가 도쿄에 왔을 때, 햄버거를 줬던 소녀, 히나다. 도쿄에 와서 항상 날씨가 흐리니 선물을 주겠다고 하며 빌딩 옥상에 있는 신사 앞에서 기도를 올린다. 그러자 놀랍게도 하늘이 맑게 개이면서 아름다운 하늘이 나타난다.

작정하고 만든 애니메이션

전작인 《너의 이름은.》으로 경쟁자인 호소다 마모루를 저멀리 떨쳐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새로운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어 명실공히 일본애니메이션의 원탑감독이 되었으니 애니메이션 팬들의 기대가 상당히 높아져 있다. 나도 마찬가지.

 

제목인 《날씨의 아이》를 처음 들었을 때, 마코토 감독이 제대로 맘먹었다는 생각을 했다. 마코토 감독의 영상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물방울. 날씨를 조종할 수 있는 아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작정하고 물방울과 풍경을 그려낼지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충분히 보상받았다. 마코토 감독에게 아름다운 물방울과 풍경은 이미 기본장착된 무기나 다름없다. 최소한 이 영화에서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트집잡는 사람은 찾기 힘들 것 같다.

 

엄마에게 맑은 하늘을 보여주기 위해 신사의 도리를 지나가면서 간절한 기도를 한 히나에게 맑은 날씨를 부를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호다카는 히나의 능력을 사용해서 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사업은 성공을 거두고, 돈에 쪼들리는 생활을 하던 히나와 호다카는 돈을 번다. 하지만 행운에는 항상 마가 끼는 법. 히나는 하늘을 맑게 하는 능력을 쓸 때마다 조금씩 몸이 투명해 지더니 결국은 사라져 버린다.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노린 신카이 마코토

《날씨의 아이》는 명확하게 전반부와 후반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밝고 희망차고 즐거운 분위기, 그러던 것이 히나가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보여준 후에는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로 바꿘다. 전작인 《너의 이름은.》을 보고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당황할지도 모른다.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원래 마코토의 모습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마코토 감독은 《너의 이름은.》 이전에는 밝고 명랑한 세상을 그린 적이 별로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어서 흥행을 담보하는 《너의 이름은.》과 자신이 정말 그리고 싶은 이전 작품들의 모습을 뻔뻔하게 합쳐놓았다고 본다. 감독노릇을 계속하자면 흥행이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니 말랑말랑한 장면도 잔뜩 집어 넣는다. 자신의 작품관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작가주의적 성향도 드러낸다. 난 이런 자세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평가할 점은 작품 후반부에 모두 들어가 있다.

도대체 얼마나 스탭을 갈아넣어야 이런 퀄리티가 나올 수 있는 걸까?

명확한 주제와 일본에 던지는 질문

도쿄는 계속 비가 내린다. 어둡고 침침하다. 이건 너무도 당당하게 지금 일본의 모습이 어둡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것이 경제든, 정치든, 마코토 감독은 일본이 지금 기울어 가고 있다고 알려 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잠깐씩 맑은 날이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 두 아이의 우정이든 사랑이든 엄청난 모험이 펼쳐지는 배경으로 그렇게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면 몇년 후 일본은 그치지 않는 비에 의해 가라앉은 도쿄처럼 회복불가능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두 아이가 만나기 전 도쿄를 그림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도쿄를 침몰시키면서까지 일본사회를 비판하고 싶어하는 마코토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날씨의 아이》는 묵직한 질문을 하나 던져 주기도 한다. 히나는 날씨를 맑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무녀다. 히나 한 명이 사라지면 도쿄 전체 시민들이 정상적인 날씨를 누리며 살 수 있다. 히나도 알고 호다카도 안다. 하지만 호다카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 지고 불행해 지는데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히나를 보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히나를 구해낸다. 그리고 도쿄는 물에 잠긴다.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전체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다른 나라라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코토 감독은 너 자신이 불행해진 후 다른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묻는다. 사회의 시선 때문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질책하는 것 같다.

★★★★☆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제 향후 십년 이상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탑 자리를 놓치지 않을 것 같다. 예술적으로 충분히 평가를 받는데 더하여 흥행력까지 갖춘 무적의 존재가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얼마나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미야자키 감독과 공통적인 점이 많이 보인다. 소년, 소녀가 주인공이고 판타지를 그려 낸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하야오 감독은 스팀펑크 느낌으로 과거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면 마코토 감독은 시대를 정확히 현실에 맞춘 판타지 작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내용에 대해 쓰다보니 OST에 대해서 거의 쓰지 않았다. 《너의 이름은.》에서 엄청난 저력을 보여줬던 래드윔프스가 다시 한 번 전체 음악을 맡았다. 말힐 것도 없다. OST 역시 강력하다. 래드윔프스의 음악은 마코토 감독의 영화와 정말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하야오에게 히사이시 죠가 붙박이로 있었던 것처럼 마코토에게 래드윔프스가 계속 따라다녔으면 좋겠다. 이런 멋진 곡들로 영화를 채울 수 있는 락그룹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한 2-3년에 한 편씩 작품을 내겠지.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블루레이가 나오면 사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