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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구시대의 마지막 주자? 새시대의 첫주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피니티 사가의 마지막 작품

마블 스튜디오가 전력을 다해 준비했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끝났다. 어벤져스3, 4는 한 편을 두 편으로 나눠서 마지막 피날레를 근사하게 마무리 했다고 생각한다. 10년에 걸친 마블의 대장정은 엔드게임을 통해 전세계의 박수를 받으며 거의 끝이 나고 팬들은 헛헛해진 마음을 추스리고 있다. 원래 아이언맨 따위는 상대도 안되는 마블 최고 인기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에 매달려 다음 타자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활기찬 모습은 있지만 리더로서의 묵직함은 아직 모자른 스파이더맨, 그는 새로운 마블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집나가 멀리 떠난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마블의 전편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의 핑거스냅으로 사라졌던 사람들이 모두 되돌아 오고 지구는 원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피터 파커도 다니던 고등학교로 되돌아가 학창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 과학역사체험으로 유럽 여행을 하게 된 파커는 마음에 두고 있던 MJ에게 고백을 할 계획을 세운다. 히어로의 삶을 놓아두고 청소년의 삶을 살고 싶은 스파이더맨.

 

하지만 닉 퓨리는 피터 파커에게 아이언맨의 뒤를 이을 것을 종용하고, 피터 파커는 위대한 히어로였던 아이언맨의 뒤를 잇는데 압박감을 느껴 닉 퓨리로부터 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피터 파커.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 물의 형태를 한 빌런이 나타나고 당황하던 피터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가 빌런을 물리친다. 그는 지구 833이라는 다른 평행우주에서 피터 파커가 있는 지구 616으로 넘어온 쿠엔틴이라는 히어로였다. 쿠엔틴의 활약상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미스테리오'라고 하고 열광한다. 아이언맨이 없어진 후 존경하고 따를 히어로가 없어진 피터 파커는 미스테리오의 정의감에 반하여 그를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겠어?

마블의 10년은 정말 대단했다. 사실 10년 동안 개봉된 영화 전체가 모두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나왔단 20여 편의 영화중에는 혹평을 받은 영화도 있었고 그냥 평작 수준에 머무른 영화도 분명히 있었다. 대단했던건 10년 동안 개별 슈퍼히어로들을 각자 영화에서 활약하게 하고 개성을 부여한 후에 그 캐릭터를 모두 모아서 몇 번에 걸쳐서 터뜨린 마블의 뚝심이 대단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 인피니티 워에 대한 세계 영화 팬들의 호응은 그런 마블에 대한 찬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블은 온 힘을 다한 어벤져스라는 불꽃놀이를 마친 후에 다음 주자로 스파이더맨을 내세웠다.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지만 마블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단연코 스파이더맨이다.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이며 마블 영화 세계관으로 들어오기 전의 두 차례의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는 단독으로도 충분히 상품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파이더맨은 마블의 차세대를 이끌 리더가 될 운명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관객의 눈이 너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인피니티 워에서 20여 명이 넘는 슈퍼히어로들이 모두 자신들의 절기를 뽐내며 3시간동안 스크린을 누비고 다녔다. 게다가 원조 어벤져스 6명이 동시에 퇴장을 해 버렸다. 스파이더맨이 정말 이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 영화 내내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의 유지를 이어 가야 한다는 압박감을 심하게 받는다. 그리고 그 압박감은 스파이더맨 역을 맡은 톰 홀랜드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마블도 마찬가지로 압박받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누구야?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캡틴 아메리가: 시빌 워》는 캡틴 아메리카 단독 영화의 세 번째 작품이었지만 캡틴 아메리카의 영화라고 볼 수 없었다. 시빌 워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아니라 어벤져스 시리즈의 연속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어벤져스 2.5라고 봐야 했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어떤가? 이 영화가 정말 스파이더맨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토니 스타크는 이 영화에서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다. 좀비로 변한 아이언맨의 모습이 한 번 나올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지배하는 건 피터 파커가 아니라 토니 스타크다. 정말 대단한 아이언맨이다.

 

영화의 메인 빌런인 미스테리오가 등장한 것도 토니 스타크 때문이다. 자신의 업적을 무시당하자 열이 받아 무시당한 자신의 아이디어로 복수를 한다. 그 복수의 대상이 아이언맨이 아니라 스파이더맨이 된 건 오로지 아이언맨이 죽었기 때문이다. 처음 본 것 같지 않다고? 착각이 아니다. 아이언맨 3에서 본 듯한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빌런 짓을 한 게 누굴까? 아이언맨이 지구를 지키라고 자신에게 준 최첨단 인공지능 시스템인 에디스(EDITH)를 안지 얼마 되지도 않은 미스테리오에게 선뜻 줘 버린다. 슈퍼히어로의 잘못으로 민간인이 피해를 입고 그걸 가까스로 막아내는 슈퍼히어로. 이것도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 어벤져스 2에서 그렇게 슈퍼히어로들을 괴롭혔던 울트론 역시 아이언맨이 만든 것이다. 아이언맨이 고생해서 겨우 자기의 잘못을 되돌린 것처럼 스파이더맨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비젼이라도 탄생해서 스칼렛 위치 짝이라도 만들어 줬지. 이번엔 그런 것도 없다.

 

고등학교 방송반의 토니 스타크 추모로 영화를 시작하더니 영화 내내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투성이다. 알겠다고. 아이언맨이 그렇게 위대하고 마블의 개국공신인 건 알겠다고. 하지만 이제 보내 줘야지. 언제까지 스파이더맨 영화에 망령처럼 나타나서 스파이더맨의 발목을 잡을 건가? 생각해 보면 스파이더맨이 처음 등장한 것도 시빌 워였고, 홈커밍도 아이언맨이 더블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였고, 이제는 죽어서까지 스파이더맨 영화에 좀비가 되어 떠돌고 있다. 이래서야 마블에서 만드는 스파이더맨 단독 영화들이 정말 스파이더맨 영화라고 할 수나 있을까?

미숙하기만 하다. 리더의 자질이 있긴 한건가?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다섯 번째 영화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아직도 미숙하다. 스파이더맨이 아직 고등학생이고, 청소년의 실수와 성장을 보여주고 싶은 건 잘 알겠다. 하지만 너무 심하다. 아무리 생각없는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자신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토니 스타크가 고민 끝에 믿고 맡겼을 에디스를 홀라당 처음 본 사람에게 넘긴다고? 이 때는 정말 영화를 보다가 쌍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미친 거 아냐?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는데 오로지 여자친구에게 고백할 생각만 가득하다. 지구가 멸망하면 MJ도 없어진다고! 도대체 타노스의 핑거스냅에 당해서 5년동안 사라진 동안 뇌도 사라진 건가? 청소년 슈퍼히어로라고 해서 아무리 봐주더라도 자신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다. 캐릭터를 잘못 잡아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어차피 애써봐야 소니 돈만 벌게 해 주는 거, 톰 홀랜드와 계약된 영화 6편을 마치고 스파이더맨의 비중을 줄이든지 없애려고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다.

 

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첫 등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파이더맨의 개인적인 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아나간 후에 어벤져스에 등장을 시켰어야 하는데, 시빌 워에 급작스럽게 등장시키면서 스파이더맨이 가지고 있어야 할 개인적인 역사를 만들지 못했다. 스파이더맨의 팬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는 삼촌의 죽음이라든지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같은 비극적인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떠벌일 줄만 알고 비장미가 없는 슈퍼히어로가 되고 말았다. 그런 비장미를 불러일으키는 장치를 아이언맨으로 설정해 버렸기 때문에 스파이더맨 영화에 자꾸만 토니 스타크가 떠돌아 다닐 수밖에 없다.

 

결국 스파이더맨은 단독으로 활약할 수 없는 슈퍼히어로가 되고 말았다. 이번까지 다섯 번째 스파이더맨이 나오는 영화를 봤지만 도저히 스파이더맨에게 지구의 운명을 맡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지구의 운명은 닥터 스트레인지나 캡틴 마블에게 맡기고 그냥 MJ하고 연애나 하시지. 청소년다운 파릇파릇함은 있지만 슈퍼히어로의 묵직함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타노스같은 빌런이 등장하면 지구는 그냥 멸망하고 말 것 같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미래를 1억번을 보고 와도 스파이더맨은 답이 아닐 것 같다.

★★★

결국 이 영화는 마블 영화의 미래는 보여주지 못했다. 그냥 아이언맨의 추억팔이 영화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아이언맨의 그늘에서 벗어났어야 하는데 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해서 너무나 아쉽다. 이제 지구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이 되어 버린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 두 개의 쿠키영상은 반드시 봐야 한다. 특히 첫 번째 영상은 너무 충격적이다. 반가운 얼굴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 장면 역시 아이언맨처럼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아이언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언맨은 스스로 'I AM IRON MAN'이라는 명대사를 날리며 커밍아웃한데 반해서, 스파이더맨은 아우팅당한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당연히 본편에 들어갔어야 할 내용이 부록이나 다름없는 쿠키영상에 들어간 건 너무 심했다.

 

많이 아쉽다. 이런 전개라면 스파이더맨은 아마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연애하고 실수하고 성장만 하다가 완전체가 되지 못한 상태로 퇴장해 버리고 말 것 같다. 2번째 영화인데도 성장만 하고 있다. 3편에서도 성장만 하다 끝나 버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