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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 비장함과 뻔뻔함이 만들어내는 헛웃음

일이 터졌다

모노의 아빠와 엄마는 게임광이다. 자연스럽게 모노도 어릴 때부터 게임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유럽을 무대로 기차여행을 하는 '헬로, 모노레일'이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 직원은 단 한 명, 고등학교 절친이자 단 하나 뿐인 친구인 고우창이다. '미스터 모노레일'은 의외로 엄청난 히트를 하면서 모노는 큰 돈을 벌었고 회사는 번창하고 직원도 많아졌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업무에 지친 모노는 여행 겸 새로운 사업구상을 위해 세 달 간 유럽여행을 계획한다. 회사의 업무는 고우창에게 맡기고 홀가분하게 도착한 유럽. 하지만 여행 9일 째 날, 지갑과 여권을 제외한 짐을 날치기 당한다. 그리고 그 순간 한국의 직원에게서 고우창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모노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노를 사모하는 우창의 동생 고우인에게 연락해 보지만 고우인도 오빠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슬슬 사건이 시작된다.

김중혁. 1971 ~ . 한국의 소설가.

세 번째 읽는 김중혁의 소설

그동안 김중혁의 소설은 두 권을 읽었다. 한 권은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라는 장편, 다음으로는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라는 단편집이다. 그런데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미스터 모노레일》마저 그저 그렇다면 김중혁과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소설가와 독자의 연을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앞서 읽었던 두 권에 비해서 《미스터 모노레일》은 훨씬 만족스럽게 읽었다.

고갑수는 '핀볼 성자'다. 핀볼 최고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드게임에서 볼교까지

책의 도입부는 모노(결국 끝까지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못 본 건가?)가 소설을 끌고 나간다. 보드게임을 개발해서 회사를 창립하고 순식간에 부자가 되고.. 사실 보드게임이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국내에서 몇 천개 팔기도 힘든 현실을 생각하면 꼭 만화같다. 마치 훌라후프를 발명해서 거부가 되는 주인공의 인생을 다룬 코미디 영화 <허드서커 대리인>과 비슷한 것 같은 초반 전개를 보여준다.

 

그런데 모노가 활약해야 부분에서 모노의 친구 아버지인 고갑수가 5억을 들고 유럽으로 튄 이후부터는 내용이 급변하면서 '조금' 만화같던 소설이 '굉장히' 만화같아진다. 고갑수는 움라우트가 붙은 발음이 있는 쾰른에서 발흥한 '볼교'의 신자였으며, 그냥 신도도 아닌 무려 '핀볼 성자'였다. 고갑수가 핀볼 성자인 이유는 핀볼 점수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5억을 들고 튄 이유는 볼교의 교주나 다름없는 '유니볼 성자'를 독대하기 위해서이다.

 

볼교라고 해서 (처음엔 나도 등장인물들처럼 불교라고 읽었다) 웃고 넘길 수만 없는 것이 나름 네 개의 계급(교주, 행정계급, 성자, 신도)를 갖추고 있고, 예언서 뿐만 아니라 본부와 성지까지 있는 어엿한 단체이다. 게다가 런던아이 지하에는 꼭같은 모양의 비밀 런던아이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 웃기다. 모든 동그란 것에 거룩함을 부여하고 광신에 빠지는 것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맹목적인 믿음에 빠진 광신도들을 풍자하고 있다.

소설의 결말은 런던 아이에서 벌어진다. 런던아이는 영국 템즈 강변에 있는 대관람차다. 당연히 강바닥에 쌍동이 런던아이 따위는 없다.

실화인 척 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뻔뻔함

몰입도가 좋은 소설을 읽으면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 듯 착각하면서 온통 감정이입을 해서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고 나면 감정이 격동되고 마지막에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몰입도가 뛰어난 소설들이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미스터 모노레일》은 다르다. 몰입도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주인공이 성공하는 소재가 보드게임이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된다. 아마도 다섯 명의 고우창 추격자들이 유럽에서 쫒는 모습을 연결지으려 한 것 같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인물들을 보드게임의 말처럼 설명하는 것도 나오고 의도하지 않았던 곳으로 (마치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한 것처럼) 이동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볼교'. 종교라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정상적인 종교라고는 할 수 없다. 좋게 봐줘야 사이비 종교이고, 그냥 종교를 흉내낸 장치일 뿐이다. 기독교라든지 불교라든지 독자가 알고 있는 어떤 종교를 붙여 놓았다면 훨씬 몰입도가 강했겠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게 아닌 것 같다. 종교의 형태와 구성을 모두 갖춘 것 같지만 볼교가 뭐야, 볼교가.. 이건 '날으는 스파게티교'만큼이나 터무니없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전개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독자는 소설에 몰입한다기 보다는 약간 한 발 떨어져서 사건들을 지켜보게 된다.

 

날으는 스파게티 종교는 기존 종교를 조롱하기 위해서 만든 가상의 종교이지만 나름대로 교리도 있고 신자도 있다.

하지만 김중혁은 마치 볼교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글을 쓴다. 온갖 조직을 설정해 놓고 성자는 '핀볼 성자', '유니볼 성자' 등 뭐든 둥글기만 하면 성자라고 이름을 붙여줄 기세다. 그런데 이 만화같은 설정의 종교에 임하는 인물들의 자세가 사뭇 비장하다. 핀볼 성자는 교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결국 순교한다. 의외로 권력과 재물을 이용하여 사회를 움직이기도 하고 폭력배까지 동원된다. 만화적 설정과 그 설정 안에서 심각하게 움직이는 인물들. 이 사이의 괴리 때문에 독자는 어처구니없는 헛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런데 김중혁은 이 실화라고 우기는 설정을 뻔뻔하게 밀어 붙인다. 심지어는 '크리스티나 보네티로'라는 인물이라든가 볼교의 핵심 교리를 각주로 달아놓기까지 한다. 나도 멍청한 것이 각주에 속아 실제 그런 사람이 있는지 알고 검색해 봤다. 솜씨좋다.

 

★★★★☆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은 것이 참 다행이다. 만약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지 않았으면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솜씨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 같다. 다른 작품을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농담같은 비장함이 깃든 소설이 김중혁의 장기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대표작이 뭔지 확인해서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읽기도 어렵지 않고 중간중간 헛웃음짓게 하는 부분도 많은데 쓸데없이 비장하기도 한 질서있게 뒤엉킨 소설이다.

 

재미있다. 추천.

 

미스터 모노레일
국내도서
저자 : 김중혁
출판 : 문학동네 201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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