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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 / 한 번은 읽어야 할 고전 디스토피아 소설

 

˝저는 신을 원합니다. 편안한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와 현실적인 위험과 자유를 원하고, 선과 죄악을 원합니다.˝

˝알 수 없군요. 왜 불행해지는 권리만 원하는지.˝

˝네, 그래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늙어서 추해지고 무능해질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기아의 권리, 더러워질 권리,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할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말할 수 없는 온갖 고통에 시달릴 권리…...˝

존은 잠깐 숨을 들이마시며 무스타파 몬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결론을 짓듯이 말했다.

˝저는 이러한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p.286

 


야만 지역의 존

서기 2540년, 포드력 632년, 존은 어머니 린다와 함께 뉴멕시코에 살고 있다. 인디언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문명과는 동떨어진 상태로 남겨진 지역으로 문명인들은 야만 지역이라고 부른다. 린다는 존이 어릴 때부터 문명 세계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아름답고 행복하고 소마가 있는 곳. 존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들은 문명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자랐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문명세계에 비하면 현재 살고 있는 야만 지역은 시궁창과 같다. 존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지낸다.

 

이웃들과 달리 어머니로부터 글자를 배운 존은 처음에는 어머니가 문명 세계에서 가져온 '태아의 화학적 세균학적 행동조절, 베타 태아저장실 종사원을 위한 실질적인 안내서'를 읽었다. 야만 세계에는 책이라곤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린다의 정부인 포페가 가져온 '윌리엄 셰익스피어 전집'은 존에게 큰 기쁨이 된다. 존은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고 또 읽어 외울 정도가 된다. 다른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올더스 헉슬리 Aldous Leonard Huxley 1894 ~ 1963 영국의 소설가

야만의 세계에서 문명의 세계로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삶을 살던 존은 어느날 운명적인 남녀를 만난다. 남자는 심리학자인 버나드 마르크스, 여자는 레니나 크라운. 그들은 문명 세계에서 왔다. 린다는 레니나를 보자마자 부둥켜 안고 자기와 아들 존을 원래 살던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정말로 문명세계 출신으로 원래 야만 지역에서 살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레니나는 뚱뚱하고 더러운데다 늙기까지 한 린다와 닿는 것을 질색하고.. 버나드는 서유럽 회장인 무스타파 몬드에게 부탁하여 린다와 존을 문명 세계로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받는다.

 

한편 존은 레니나를 보고 야만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다른 아름다운 모습에 한 눈에 반하고, 레니나 역시 허우대 멀쩡하고 야만인이라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존을 보고 내내 잠자리를 하고 싶어한다.(야만 지역을 구경하고 싶어서 접근권한이 있는 버나드를 꼬셔 함께 온 기억 따위는 훨훨 날려 버린 레니나) 하지만 두 사람이 살아온 세계가 다른만큼 가치관도 완전히 다르다. 야만 지역에서는 한 남자는 한 여자와만 사랑하는 것이 룰이고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문명 세계에서는 모든 여자와 남자는 원하기만 하면 상대와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심지어는 7살 때부터 아이들이 성적인 놀이를 교육받으며 한 남자와 4개월 이상 만나면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여러가지 문제를 품은채 함께 문명세계로 돌아온 버나드와 레니나, 그리고 린다와 존. 린다는 늙고 추한 모습 때문에, 존은 말끔한 모습과 특이한 생각과 행동 때문에 문명세계의 이슈가 된다. 린다는 소마에 취해서 행복을 느끼며 비몽사몽에 빠지고, 존은 처음 만나는 문명세계를 경험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임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통' 속에서 자란다. 그 통속에 있을 때 산소의 양을 조절하여 아이들의 계급과 직업을 미리 설정한다.

디스토피아를 다룬 걸작 소설, 도대체 어떻게 읽었을까?

어릴 때 분명히 읽었는데 너무 오래 돼서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는 책들이 꽤 있다. 그 중에 다시 읽고는 도대체 이 책들을 읽고서 이해를 제대로 했을까 싶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과학적으로 고찰해서 추리소설로 풀어 놓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나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어른이 되어 읽어 보니 너무 야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 같은 《아라비안 나이트》같은 책이 그런데, 《멋진 신세계》 역시 빠지면 서럽다. 이렇게나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풍자가 넘치는 책을 제대로 이해했을 리가 없다. 아마도 SF소설 중 한 권 정도로 이해하고 《은하철도 999》 보듯이 읽었겠지. 나이가 들어 다시 읽은 《멋진 신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었다.

 

버나드와 존, 그리고 무스타파 몬드

처음엔 계획을 벗어나 못생긴 채 태어난 버나드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소문에 따르면 부화병 안에 혈액 대신 알콜을 주입받아 머리는 좋으나 신체적 약점을 안고 태어난 버나드. 충분히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동기도 가졌고, 두뇌도 가졌다. 사회 전복의 주인공이 될 것 같았던 버나드는 야만인 지역에서 존을 만난 후 빠르게 이야기 중심에서 벗어난다. 존이 진주인공으로 소설의 후반부를 장식하면서 버나드가 연심을 지니고 있던 레니나 크라운까지 존만 쳐다본다. 대단한 역할이 있을 것 같았던 버나드가 사실은 존을 등장시키기 위한 마중물 정도였다. 한 가지 더 역할이 있다면 미래사회를 보여주기 위한 안내인 정도.

 

이야기는 존이 문명사회에 던져진 후부터 본격적으로 굴러 간다. 존이 살던 세계는 구역질날 것 같지만 사실은 약간 지저분한 현대사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에도 세계의 어떤 곳은 그렇게 살고 있다. 문명사회는 상상으로 만들어 낸 사회다. 존은 어머니를 통해 들어서 동경해 오던 문명사회가 처음엔 좋았으나 철저한 계급과 소마에 의해 콘트롤되고 있는 사회에서 자유가 없음을 느끼고 절망한다. 그 후에 최후의 자유, 즉 스스로를 망가뜨리면서 결말을 맞는다. 굉장히 장엄한 결말을 맞은 존.. 그런데 정말 존이 옳았던 걸까?

멋진 신세계에서 성은 그저 오락일 뿐이고 자손을 두는 수단이 아니다. 책임지지 않는 쾌락이 지배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유명한 디스토피아, 하지만..

《멋진 신세계》가 만들어 놓은 문명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의 세계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디스토피아 세계이다. 하지만 이 세계가 정말 디스토피아일까?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점에서 분명히 디스토피아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신조작에 의해서 모든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 완벽하게 만족하게 만족하고 살고 있다. 알파는 알파대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감마 이하 하층민의 육체노동을 경멸하며 산다. 그렇다고 하층 계급이 상류층을 부러워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충분히 삶에 만족하며 산다. 게다가 우울하거나 불행이 느껴질 여지가 생기면 부작용없는 마약인 소마로 행복감까지 추가로 얻을 수 있다. 사회는 안정적이고 절대 가난도, 악인도 없다. 도리어 존이 문명사회로 와서 잘 돌아가는 사회의 시스템을 망가뜨리려고 하고 죄악을 원한다고 외치고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은 존의 행동에 공감하고 그의 감정흐름에 따라가는데, 소설을 덮고 나서 생각하니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 소설 속 사회와 다르지만 다른 방향으로 시스템화되어 있는 현대 한국사회(특히 대도시)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견딜 수 있을까?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멋진 신세계》의 사회는 현대의 모든 국가들이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구현해 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만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상위 몇 명 뿐 아닐까? 매트릭스를 보면 끔찍하지만 만약 매트릭스 안에서 완벽한 삶을 구가할 수 있디면 현실로 돌아가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결국 통속의 뇌가 되어 행복할 것인지 현실을 살면서 불행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데..

소설 속의 사람들은 사실 불행해 할 틈이 없다. 게다가 조금 불행하다 싶으면 '소마'가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상적인 사회일지도..

★★★★☆

《멋진 신세계》는 SF소설이면서도 보기 드물게 고전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소설이다. 당시 사회에 비추어 미래를 상상한 것도 대단하다. (다른 방향으로) 많은 부분 현실화된 것도 있다. 문명세계와 야만세계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킨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전반부에 학생들을 통해 세계를 자연스레 설명하는 기법은 이후 SF소설에서 수없이 사용되어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있을 정도이다. 무엇보다.. 소설이 정말 재미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며 고전이다. 하지만 원래 '고전'이라는 게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실제 읽은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을 말하는만큼 실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재미있고 생각해 볼 여지도 많다.

 

추천한다.

멋진 신세계
국내도서
저자 :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 / 정승섭역
출판 : 혜원출판사 200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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