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항공을 재건하라
전편의 활약을 뒤로 하고 한자와 나오키는 다시 도쿄중앙은행 영업2부 차장으로 영전했다. 어느날 영업2부장은 이미 한 번 실패한 TK항공의 재건을 한자와 나오키 차장에게 지시한다. 나카노와타리 행장이 특별히 한자와를 지명했다고 한다. 갑자기 쏟아진 일거리. 영업2부에서 맡을 일이 아니라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행장이 직접 지시한 일을 무시할 수는 없고, 한자와는 TK항공의 재건계획을 수립하는데 착수한다. 하지만 TK항공의 가미야 이와오 사장은 천하태평, 한자와에게 협조하지 않는다. 하지만 믿었던 도쿄중앙상사의 투자가 무산되자 가미야 사장은 한자와의 수정재건 계획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일이 잘 풀리려 했으나..
때는 중의원 선거가 한창이던 때, 집권여당이던 헌민당이 정권을 잃고 진정당이 정권을 잡는다. 국토교통성 대신이 된 시라이 아키코 대신은 TK항공의 재건안을 백지화하고 재건TF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TF의 본부장인 노하라 쇼타는 한자와를 무시하면서 도쿄중앙은행이 갖고 있는 TK항공의 채권 중 70%를 탕감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한다. 한자와는 노하라 본부장의 방해를 뚫고 항공을 재건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와 대결하는 한자와 나오키. 한자와는 성공할 수 있을까?
더 커진 스케일, 더욱 막강한 상대
1편 <당한 만큼 갚아준다>, 2편 <복수는 버티는 자의 것이다>, 3편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에서 격랑을 헤치고 한자와는 다시 도쿄중앙은행의 영업2차장이 되었다. 은행은 여전히 산업중앙은행과 도쿄제일은행이 서로 질시하며 대립하고 있고, 승승장구하는 한자와를 넘어뜨리려는 반대 세력도 존재한다. 이 와중에 한자와에게 떨어진 업무는 항공사를 본 궤도에 올려 놓으라는 지시.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한자와 앞에 훨씬 강력한 적이 나타난다.
국토교통성 대신, 우리나라로 따지면 국토교통부 장관인 시라이 아키코 대신은 권력욕으로 똘똘 뭉쳐 있다. 시라이의 앞잡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니면 시라이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하는 TK항공 회생TF의 본부장인 노하라 쇼타는 산전수전 다 겪은 기업재건 전문변호사이며 물욕의 화신이다. 그동안 은행내 적대 파벌 직원들과 외부 기업인들이 한자와의 적이었다면 이번에는 대신, 즉 정부가 한자와의 적이다. 마지막 권에 와서 한자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적을 만나 그들의 욕망을 깨부셔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동안 등장하지 않던 정부 고위급이 나타났다. 시라이 대신은 국토교통성 장관이기는 하지만 원래는 잘나가던 아나운서 출신일 뿐, 행정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나 마찬가지다. 노하라 쇼타의 세치 혀에 놀아나는 권력욕 덩어리이면서 자리에 걸맞는 품격도 갖추지 못했다. 처음 행장과 만나는 장면에서 그런 모습이 두드러지는데 정말 일본의 장관 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최근 환경성 대신인 고이즈미 신지로 대신의 언동을 보면 상상은 현실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 그럴싸하다고 느껴진다. 특히 관료라는 수재집단이 그저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이 되고 대신이 된 정치인들의 멱살을 잡아끌고 가는 일본의 현재 모습이 풍자적으로 잘 표현된 것 같다. 엘리트 출신인 한자와가 보이겐 그저 운이 좋아 장관이 된 시라이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지..
부패하고 아마츄어같은 정치에 대한 조롱
《한자와나오키 4》 <이카로스 최후의 도약>이 발표된 것은 2014년 8월이다. 이 시기가 좀 재미있는 면이 있는데, 일본에서 철벽과 같았던 자민당이 집권에 실패하고 역사상 처음이자 (지금까지는) 마지막으로 정권교체를 했던 일본 민주당이 권력을 내려 놓은지 2년째 되는 해다. 그러니까 소설속의 민헌당은 자민당으로, 진정당은 민주당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을 수밖에 없다. 당시 정권교체의 꿈을 이룬 민주당은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받았으나 자민당 못지않은 부패와 자민당만도 못한 능력으로 결국 집권 4년만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에 패배한 후 정권을 내놓게 된다.
《한자와나오키 4》에서는 아마츄어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권에 대해 조롱(어쩌면 연민일지도)으로 시라이라는 얼굴마담 정치인을 끌고 왔다. 그리고 부패한 정치인으로는 미노베 의원을 보여 준다.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은행은 항상 자사의 이익만 생각하고 필요한 곳에는 대출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소설 속에서 썪은 정치와 징징거리기만 하는 정치인에 비하면 더 당당하고 원칙을 고수한다. 이렇게 보니 이케이도 준이 혹시 자민당과 아베를 지지하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살짝 든다. 작품내내 자본의 자율을 강조하고 정부의 간섭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개인적인 나의 경제관과는 달라서 조금 불편하기는 했다.
이제는 좀 뻔한 스토리 전개
4권까지 읽고 나서 이제 이케이도 준의 플롯 스타일이 눈에 익어 버렸다. 한자와는 항상 정론을 펼치는 원칙주의 은행원이다. 은행내에는 한자와에게 반대하는 반대파가 있고 이들은 반드시 비리가 있다. 은행내의 적은 은행 외부의 더 거대한 협조자가 있는데 협조자 역시 은행과 관련있는 비리가 있다. 은행내의 반대파는 손발 역할을 하는 부하직원이 하나 있는데 이 부하직원은 소설 3/4 정도에서 몰락하며 버림받고 첫번째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낸다. 적군과 아군의 선명한 대비는 극적 통쾌함을 선사하지만 대비가 노골적이어서 마지막권에 오니 이제는 너무 평면적으로 보인다. 오히려 가족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1편의 아사노가 뒤에 나오는 적들에 비해서 훨씬 입체적이다. 한자와 나오키가 위기에 처하면 순간에 굉장히 유력한 조력자들이 등장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항상 같다.
정치권에 대한 혐오도는 너무 노골적이고 정치권에 대항하는 은행원과 관료에 대해 긍정하는 모습은 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보다 엘리트들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주는 것 같다. 아, 지금 일본 정치인들의 상황을 보니 일본에 한해서는 틀린 말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
전형적인 소설이라는 건 분명히 단점이지만 바로 그 전형적인 점 때문에 구도가 명확해서 읽기 쉽고 시원시원하다. 450 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꽤 두꺼운 편인데도 불구하고 금세 읽을 수 있다. 여전히 몰입감도 뛰어나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3권까지 읽은 독자라면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올해 2/4분기에 방영될 예정이었던 드라마 2기가 코로나 때문에 연기된 것은 너무나 아쉽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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