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소설

《용은 잠들다 龍は眠る》 미야베 미유키 宮部みゆき / 초능력을 버무려 놓은 추리소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태풍 속에서 만난 고등학생

고사카 쇼고는 잡지사 기자이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날, 치바현을 운전하며 지나던 중 자전거가 펑크나서 옴짝달싹 못하는 이나무리 신지를 만나 차에 태워준다. 도쿄를 향해 가던 중 덜컹거리는 차. 사람을 친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 살피니 폭우 때문인지 도로의 맨홀이 열려 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려 하는데, 맨홀 옆에서 아이들이 쓸 법한 노랑 우산을 발견한다. 근처에 사는 다이스케라는 일곱 살 소년의 우산인데 실종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폭우에 휩쓸려 맨홀로 빨려들어간 것 같다.

 

그저 단순한 사고사라고 생각하는 고사카. 그런데 신지는 직접 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장면들을 설명한다. 아이가 부르던 강아지의 이름을 알고 있다든지, 빨간색 포르쉐를 몰던 두 남자가 맨홀 뚜껑을 열어 놓았다든지. 신지가 설명하는 것을 듣던 고사카는 처음에는 신지가 맨홀을 열어 놓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지는 자신이 물건을 만지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볼 수 있고,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라고 설명한다. 반신반의하는 고사카. 하지만 오랫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내밀한 과거사까지 줄줄 읊어대는 신지를 보니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사고가 있은지 6개월 후, 신지의 외사촌 형이라고 하는 오다 나오야가 잡지사로 찾아 온다. 나오야가 말하기를 고사카에 대해서 신지가 했던 말은 모두 추리에 의해서 초능력이 있도록 믿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신지를 믿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신지를 만나니 신지는 나오야 역시 자신과 같은 초능력자이며 자기보다 능력이 더 강력하고 심지어는 텔레포테이션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지와 나오야는 초능력자일까? 아니면 신지는 그저 치기어린 사기꾼일까? 그즈음 고사카가 근무하는 잡지사로 배달된 아무것도 씌여있지 않은 여섯 통의 편지와 한(恨)이라고 씌여있는 일곱 번째 편지는 어떤 의도로 누가 보낸 걸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물과 사건 속에서 고사카는 진실을 쫒기 시작한다.

 

미야베 미유키 宮部みゆき 1960 ~ . 일본의 소설가

처음 읽은 미야베 미유키 소설

일본 소설은 드문드문 읽는 편이었는데 최근에 꽤 많이 읽고 있다. 좀 읽는다 해도 다양하게 읽지는 않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꽤 많이 읽으면서 다른 작가의 책은 한두 권 정도 읽는 정도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서점의 서가를 훑어 볼 때 이름이 눈에 익어 있었고, 《모방범》이나 《솔로몬의 위증》같은 책을 썼다는 점 정도만 알고 있었다. 눈에 자주 띄었지만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 너무 두꺼웠기 때문이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보통 끝까지 읽어야 하는데 3권짜리 소설은 너무 부담스럽다. 언제 한 번 읽어보기는 할 생각이었는데 책장에 《용은 잠들다》가 꽂혀 있다. 도대체 언제 사놓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왕 눈에 띄었고, 썩 두껍지도 않으면서 한 권짜리 소설로 큰 부담이 없어서 읽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일본 추리 + SF 소설

《용은 잠들다》는 열린 맨홀에 한 아이가 빠져 죽는 사건이 발단이 되어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얽히는 추리소설이다. 처음에는 맨홀을 열어놓아서 아이를 죽게 만든 범인들을 초능력을 이용해 잡는데 초점이 맞춰지는 듯 하더니, 초능력을 가진 또다른 청년이 나타나면서 인물들의 관계와 정체가 오리무중에 빠진다. 거기에 의도를 알 수 없는 편지가 고사카에게 배달되면서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소설 초반에는 신지와 나오야가 정말 초능력자인지 아니면 나오야의 말대로 신지가 고사카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와중에 맨홀 뚜껑을 연 범인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고사카가 받은 아무것도 씌여지지 않은 편지와 한(恨)이 씌인 일곱 번째 편지, 노(怒)가 씌인 여덟 번째 편지로 궁금증이 옮아간다. 그러더니 전혀 뜬금없이 3년 전 헤어져서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던 고사카의 옛 애인 사에코가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전형적인 추리물인 것 같지만 그 사이에 두 명의 초능력자가 끼여 들면서 얘기는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는데, 좀 더 강력한 초능력자인 오다 나오야가 악한 마음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안심하고 책을 읽어나갈 수가 없다.

 

사이코메트리는 사물의 기억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말한다.

적절한 사건배치와 밀도있는 플롯

사실상 주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지와 사에코 사건이 추리가 필요한 사건인데 추리과정이 어렵지는 않다. 정황상 범인이 눈에 잘 보이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시시하지는 않다. 다양한 사건이 펼쳐져 있고, 주요 등장인물의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인물들도 개성이 잘 살아 있다. 흔히 초능력자와 기자의 조합을 생각하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초능력자와 그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하는 환상의 파트너를 예상하기 쉬울텐데, 신지는 열일곱 살 나이에 걸맞게 혈기는 왕성하지만 미성숙해서 오히려 사건해결을 망치기 일쑤이고 고사카는 멋진 해결사가 되기보다는 그저 도움이 필요하고 영문도 모른채 사건에 끌려다니기만 한다. 결과적으로 멋진 초능력자와 해결사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나오야이다.

 

여러 사건이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있어서 지루해질 때쯤 새로운 사건을 던져 놓고 그 사건들을 이리저리 엮어 놓았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아무래도 그동안 많이 읽었으면서 미야베 미유키와 마찬가지로 추리소설을 기본으로 소설을 쓰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게이고의 소설이 성근 망으로 큰 물고기만 낚는다고 한다면,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는 저인망식으로 훑어가는 느낌이다. 게이고가 하나의 사건을 던져 놓고 계속해서 그 사건만 쳐다보고 일직선으로 달린다면, 미야베 미유키는 이곳저곳 함정을 파놓아서 피하면서 삐뚤빼뚤 목표를 향해 나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 쪽이 이야기에 밀도가 좀더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

비록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요소를 잘 배치해 놓았다. 초능력자라고 해서 모든 사건을 말끔히 해결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치명적인 약점을 설정해 놓아서 자칫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수 있는 여지를 없앤 것도 좋은 장치다. 무엇보다 흡입력이 뛰어나 끝까지 읽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어 금세 읽을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평작보다는 낫고 명작보다는 좀 떨어진다. 앞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좀더 찾아서 읽어 보려고 한다.

 

재미있다. 추천.

용은 잠들다
국내도서
저자 : 미야베 미유키(Miyabe Miyuki) / 권일영역
출판 : 알에이치코리아(RHK) 2018.12.10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