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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

《당신이 옳다》 정혜신 / 네 마음은 어떠니?

상처입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던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중국의 요순시대라고 해서 모든 백성이 행복하지는 않았을 테다. 사회가 대체로 안정되고 대다수 시민이 행복해 보여도 그 속의 개인들은 불행 속에 살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당당한 선진국으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각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다른 사람이 들으면 놀랄 만한 상처를 하나씩 지니고 있다. 평소에는 숨겨놓고 있지만 드러나면 한 방에 터질 수 있는 폭탄을 품고 산다.

 

저자인 정혜신에 대해서는 미디어를 통해서 알고 있다. 처음 접한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세월호 사고 당시 피해자 가족들의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모습,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트라우마를 어루만져 줘야 하는지 역설하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그외에도 굉장히 많은 활동을 한 것 같은데, 자세히는 잘 모른다. 그저 굉장히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만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다.

 

1963 ~ .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적정심리학이란 뭘까?

적정기술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회에서는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사정에 맞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상황이 굉장히 열악한 최빈국이 있는데 이 나라의 국민들은 만성적인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보자. 우리나라 정부가 이 나라에 원조를 제공하면서 5G 통신기술이나 최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에는 우물을 파는 기술이나 도르레를 만들 수 있도록 원조를 하거나 상수도를 구축할 수 있는 SOC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당장 국민들이 물 때문에 죽어나가고 있는데 최첨단 기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유명한 적정기술의 예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잠비아 정부는 농촌 주민들의 영양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모든 국민들에게 매일 계란 하나씩을 공급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계란 생산은 늘어났지만 공급은 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계란판을 만드는 공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를 알게된 슈마허라는 경제학자가 다국적 기업에게 일년에 계란판 백만 개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을 지어줄 수 있는지 문의했는데, 대답은 노. 그 기업에서 만드는 공장 하나만 있어도 한달에 계란판 백만 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달에 백만 개를 만드는 기계보다 일년에 계란판 백만 개를 만드는 공장이 효율은 떨어지지만 잠비아에 필요하다. 이게 적정기술이다.

 

정혜신이 말하는 적정심리학은 여기서 나온 듯하다. 세상에는 전문가들이 많고 심리학자나 상담가는 굉장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내담자를 상담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지식들이 내담자와 벽을 만들고 아득히 높은 곳에서 충조평판(저자가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줄여서 사용하는 말)해서 오히려 내담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벼랑 끝으로 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정혜신의 문제의식이다. 상담을 위해서 상대의 트라우마 혹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적정한 정도의 상담기술과 상대방을 이해려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이 책은 그 적정한 수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쉽지는 않은 상담의 기술과 자세를 알려 준다.

 

충조평판하지 말고 상대의 본질에 집중하라

책의 첫 장에서 저자는 자아를 잃은 사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설명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맞추다가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스타를 보여주고, 집단으로 규정된 노인의 모습을 보여 주며 개인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우려한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미디어 혹은 집단 속의 모습으로 평가받으면서 주체적인 개인으로 주목받을 수 없을 때 무너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너진 개인을 상담하는 사람들조차 그저 '우울증'으로 치부하고 손쉽게 자신이 정한 카테고리에 집어 넣고는 치료한답시고 충조평판한다. 이게 잘못이다.

 

저자는 이런 판단이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막는다고 한다. 저자는 '개인의 감정'은 항상 옳다고 역설한다. 판단은 뒤로 하고 그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것이 모든 상담의 첫걸음이다. 반드시 공감을 할 필요는 없다. 그 후에 그 사람이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프롤로그와 첫 장에 모두 씌여 있다. 이후로는 그 마음을 갖고 어떻게 상대를 효과적으로 적정하게 어루만져 줄 수 있는지 세부적인 기술을 알려 준다. 책을 읽어보면 알 일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큰 트라우마를 남긴 세월호. 정혜신은 이 때 많은 사람을 위로해 주면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상처입은 자가 아닌 어루만져 주는 사람이 읽을 책

책 제목으로만 봤을 때, 상처받는 사람을 위한 위로의 책인 줄 알았다. 읽다보니 그런 책이 아니라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상담을 해주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알려 주는 책에 더 가까워 보인다. 독자에게 '당신이 옳다'고 말해주는 책이라기보다는 독자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이 옳다'고 말해 주라는 책이다.

 

책 속에 밑줄 그으면서 새겨두어야 할 말들이 많다. 몇가지만 적어 보면..

 

근자에 정신 질환뿐 아니라 우울이나 불안, 부끄러움같은 우리 일상의 불편이나 곤란의 원인들을 뇌의 생화학적 문제로 몰아가는 추세가 도를 넘었다는 느낌이다.
p.26
자신의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결정적 요인이다. 말이 아니라 내 고통을 공감하는 존재가 치유의 핵심이다. 자신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면 사람은 지옥에서 빠져나올 힘을 얻는다.
p.108
공감은 누군가의 불어난 재산, 올라간 직급, 새로 딴 학위나 상장처럼 그의 외형적 변화에 대한 인정이나 언급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 사람 자체, 그의 애쓴 시간이나 마음씀에 대한 반응이다.
p.142

 

첫 장 이후의 내용은 첫 장의 각주이다. 저자가 경험한 사례가 많이 제시되어 있고 설명하고 있지만 첫 장을 제대로 공감하고 나면 비슷한 내용이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다. 애초에 크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조금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하다.

 

2020년. 코로나19(covid19)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다. 우리 사회는 또 다른 트라우마를 지니게 될 것 같다.

★★★★

사실 이런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전문가가 쓴 행동에 대한 조언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고 독자는 적용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항상 '네 마음은 어떠니?'라는 말로 상대방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것 같은데, 만약 내가 이런 말을 누군가한테 꺼냈을 때, 저자만큼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아마 코웃음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정혜신이 유명한 상담자라는 신뢰감이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 냈을 테니, 이 책을 읽은 사람이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접근과 방법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면이 많다. 특히 상담중에 충조평판하지 말라는 말은 개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숙제이다.

 

읽기 어렵지 않고 독자에 따라서는 인사이트를 얻을 여지가 분명히 있다. 좀 반복되는 경향은 있지만 책이 얇으니 그냥 읽어도 될 듯.
이런 종류의 책으로는 드물게 추천한다.

 

당신이 옳다
국내도서
저자 : 정혜신
출판 : 해냄출판사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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