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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종교

《내가 왕이었습니다》 이익상 / 사사기, 타락하고 분열하는 이스라엘 역사

하나님의 영이 한 번 임했다고 해서 그가 영원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늘 유혹과 시험이 있습니다. 그 유혹을 이기고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입니다.
p.147

가나안을 정복하라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는 파라오에 대항하여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숨을 거둔 모세에 이어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점령하면서 가나안 정복의 역사가 시작됐다. 여호수아도 숨을 거두고 이제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전역에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아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가나안에는 오랫동안 살던 가나안 원주민들 뿐만 아니라 모압, 암몬, 블레셋 등 강력한 세력으로 히브리인들을 괴롭히는 민족들이 즐비하다. 시도때도 없는 위험에 직면한 민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영이 임한 선지자이자 정치가, 군사지도자가 나타난다. 그들이 사사이다.

저자 이익상. 현 춘천중앙교회 부목사.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구약성서학을 전공했다. 성서학 연구소 비블리아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같은 이름의 팟캐스트도 운영중이다.

흥미진진한 구약 역사

초등학교에 다닐 때,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가 굉장히 재미있었다. 성경도 읽었지만 아무래도 읽기 어려웠기 때문에 성경을 풀어 놓은 책들을 많이 읽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재미있게 본 성경은 사사기와 열왕기서였다. 창세기는 규모가 너무 작았고 이야기가 단순했다. 선지서나 성문서는 좀 이해하기 어려웠고 재미도 없었다. 하지만 사사기로부터 열왕기로 이어지는 역사에서는 온갖 전쟁이 일어나고 영웅들이 등장하고 통일왕국이 형성되더니 또 분열하는 등 온갖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주욱 펼쳐진다. 난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가 참 좋았다. 초등학교 때 하나님의 뜻 같은 것에 대해서 도대체 뭘 알았을까? 그저 그리스로마신화나 삼국지 읽듯이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땅에 들어서서 정착해 나가는 과정을 쓴 책이다. 아무리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했다고 하지만 가나안에서 수천년을 살아온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지들 살겠다고 쫓아내고 마구 학살하고 전쟁일으키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며 얼마나 황당했을까? 어쨌든 순전히 기독교인 입장에서 성경을 보던 내 눈에는 사사기는 왼손잡이 에훗, 여자사사 드보라, 기드온과 삼백명의 전사들, 전쟁에서 이겼다고 자기 딸을 번제로 바친 정신빠진 입다(책에서는 번제로 바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들릴라에 빠져 이스라엘을 말아먹은 삼손 등 별난 캐릭터를 지닌 영웅들이 펼치는 흥미진진한 옛날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왕이었습니다》를 읽고 사사기는 영웅들의 서사시도,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의 역사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스라엘의 사사들. 출처 비블리아( https://biblia.co.il/ ) 홈페이지

구약성서학 전문가가 해석하는 탁월한 사사기 해석

이익상 목사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처음 알았고, 성서학연구소 홈페이지인 비블리아(BIBLIA)에서 글을 읽으면서 그의 해박한 성경 지식과 탁월한 해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감리교 신학대를 나오고 이스라엘에 유학해서 히브리 대학과 텔아비브 대학에서 성서학을 전공한 이익상 목사는 정통 성서학자이다. 그가 쓴 글들과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성경에 대한 그의 지식이 얼마나 뛰어난지 금세 느낄 수 있다. 특히 나처럼 복음주의적이고 성경을 축자영감설로 설명하는 보수주의적 전통이 강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사람에게 성경을 문서설에 의해서 분류하고 잘못된 번역을 꼬집어 주는 이익상 목사의 해석은 처음 받아들이기에는 좀 충격적이기까지 할 수도 있다. 거룩한 성경의 흠을 잡는 것 같아서 불편할 수도 있다. 마치 믿음없는 학자의 오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신실한 신자들을 실족케 하는 시험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한때 장래희망이 목사였던 나도 성경을 다르게 보는 관점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 신앙과 거리가 멀어졌으니, 내 경험으로 볼 때 아주 말도 안되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모세오경은 모세가 쓴 것이 아니고, 여호수아는 여호수아가 쓴 책이 아니다. 성경은 여러 전승을 어느 순간 한 사람이 편집하여 쓴 책이기 때문에 내용상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성경은 원본도 남아 있지 않고 필사로 베끼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 번역도 할 때마다 다르고 당연히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너희는 간음하지 말지어다'라는 십계명을 '너희는 간음할지어다'라고 잘못 쓴 간음성서까지 있으니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경이 오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게다가 그 성경을 충분한 지식과 고민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목사들도 많은 것은 당장 뉴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성서를 학문의 영역에서 엄밀하게 연구해 온 이익상 목사의 사사기 해석은 비록 관점이 다르더라도 믿고 읽을 수가 있다.

입다 시대의 이스라엘과 주변 민족들. 출처: 비블리아 홈페이지

눈감고 보지 않았던 사사들의 본 모습

사사기는 그동안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사들의 모습과 이민족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설교 소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과연 사사들이 영웅들이었나 하는 점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초기 에훗에서 드보라까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사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사사 중에 한 명인 기드온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사사라고 알려진 삼손에 이르면 하나님의 영과는 상관없는 쓰레기같은 지도자들이 널려 있는 걸 알 수 있다. 영웅적인 이야기에 눈이 가려서 보지 못했던 사사기 시대의 이면을 이해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꿈이 깨지는 것과 비슷해서 참 불편하지만 사사기의 기록자가 알려 주려고 했던 사사 시대의 본 모습을 확연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사사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을 준다.

 

충격적이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한 레위인과 첩의 이야기를 접하면 이스라엘이 과연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었나 하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이다. 지금까지 성경을 몇차례 통독했고 사사기는 좋아하는 성경 중에 하나라서 즐겨 읽었지만 도대체 내가 읽은게 뭐였는지 모르겠다. 그냥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까 아무 생각없이 의미없이 눈으로만 훑은 결과다. 읽기는 했지만 깊이가 없었고 실제로 그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내가 왕이었습니다》를 읽으면 그동안 보지 않았던 사사기의 이면을 볼 수 있다. 사사의 시대가 어떻게 타락하고, 사사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며, 어떻게 지파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우상숭배가 만연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성경에 없는 내용이 아니다. 단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읽던 성경에서 벗어나 관심이 없었던 부분을 명확히 보여주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알려 준다. 풍부한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은 덤이다.

사자와 싸우는 삼손. 삼손은 단지파 출신의 사사로서 나실인으로 유명한 사사이기도 하다. 드라마틱한 일생 덕분에 수많은 예술작품으로 재해석되어 왔다.

신앙과 성서 해석의 균형

성경을 해석할 때 가장 위험한 점은 무오성을 헤쳐서 신앙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그랬다. 그리고 많은 신학자들이 그 전철을 따라 가는 것 같다. 학문적인 신학으로 독일이 굉장히 유명한데, 오죽하면 '독일에는 신학자는 있지만 신자는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내가 왕이었습니다》가 좋은 점은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하면서도 믿음을 가진 사람을 실족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실한 사사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시대라고 생각하면서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사사들의 승전의 역사가 신자의 승리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이익상 목사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사사 시대야말로 인간이 어떻게 타락는지 끊임없이 설명하면서 믿는 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시대라고 설명한다. 한 때 하나님의 영을 받아 믿음으로 충만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타락해 가는지 보여준다. 사람이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나갈 때 어떤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눈을 똑바로 뜨고 보라고 한다. 이익상 목사는 사사기의 이면을 보여주고 잘못된 번역을 알려 주고 풍부한 고고학 지식으로 알려 주지만 믿음의 선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이렇게 균형잡힌 점이 《내가 왕이었습니다》의 가장 좋은 점이다.

바알(Baal)은 고대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하던 폭풍우와 번개의 신이다. 아세라와 함께 구약성경에 나오는 가장 대표적인 우상이기도 하다.

★★★★☆

성경을 해석한 책이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데 《내가 왕이었습니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성경에 대해, 사사기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려울 테지만 어릴 적 교회학교에서 사사기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혹시라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들처럼 성경을 분해해서 믿음을 잃어버리게 할 것 같은 느낌에 꺼려할 이유도 없다. 기본적으로 이익상 목사는 신앙심이 깊어 보이는(이 부분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가 없다) 목사님이기 때문이다. 사사기를 비롯해서 성경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쌓을 수 있고 더불어 고대 이스라엘의 지리와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성경을 좀더 자세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읽어 두면 큰 도움이 될 책이다. 앞으로 나올 이익상 목사의 다른 책들이 기대된다. 《내가 왕이었습니다》처럼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고고학적 지식이 담겨 있으면서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그렇게 흔하지 않으니 강력하게 추천한다. 단지 이전 책인 《이스라엘 따라걷기》에 비해서 판형이 작아지고 종이의 질이 나빠진 점은 조금 아쉽다.

 

사족으로,

글을 쓰다 보니 마치 내가 믿음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써 있는데, 나는 아직 돌아가지 않은 탕자다.

 

내가 왕이었습니다
국내도서
저자 : 이익상
출판 : 규장문화사(규장) 20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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