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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시

근체시의 규칙 / 한시를 짓는 방법

우리나라의 시나 영시는 어느 정도 읽어 봤지만 한시는 중학교 때 수업시간에 잠깐 배운 이후로는 거의 본 적이 없다. 한자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후에 그냥 한자를 능력시험 준비하듯이 공부하는 것보다는 한시를 읽으면서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시에 관한 몇가지 책을 샀는데 책을 사서 보다 보니 한시가 그저 한자를 늘어 놓은 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글자수만 맞추면 되는 우리나라의 정형시 定型詩인 시조와는 달리 압운과 평성, 측성의 배열방식이 있어서 꽤 까다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백 李白. 당나라의 시인. 자는 태백 太白이며 두보와 함께 중국 역사상 양대 시인으로 불리운다. 시선 詩仙.

 

고시와 근체시

한시가 처음 지어질 때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었다. 글자수만 맞추어서 시를 지었다. 그러던 것이 시를 지을 때 일정한 규칙을 따르면 운율이 더 좋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규칙을 따르게 되고 당대 唐代에 이르러서는 시를 지을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칙이 생기게 된다.

고시 古詩고체시 古體詩라고도 한다. 구수 句數운율 韻律에 구속이 없는 시이다. 쉽게 자유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글자수만 맞추어서 지은 시이다. 다섯 자로 이루어진 구를 배열하는 5언고시와 일곱 자로 이루어진 구를 배열하는 7언 고시가 있다.
근체시 近體詩금체시 今體詩라고도 한다. 근체시는 정형시이다. 글자를 배열하는 형식이 정해져 있다. 시조에서 마지막 세번째 행의 첫 단어는 반드시 세 글자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구의 글자수로 구별하면 5언시와 7언시가 있고, 구의 숫자에 따라 절구, 율시, 배율로 나눌 수 있다. 근체시에서 지켜야 할 형식은 아래에서 다룬다.

 

두보 杜甫. 당대의 시인. 자는 자미 子美. 이백과 함께 중국 역사상 양대 시인으로 불리운다. 시성 詩聖.

 

절구 絶句와 율시 律詩

절구와 율시와 배율은 글자의 수로 구별한다.
5언 절구 : 5자 X 4구(행) = 20자
7언 절구 : 7자 X 4행 = 28자
5언 율시 : 5자 X 8행 = 40자
7언 율시 : 7자 X 8행 = 56자
5언 배율 : 5자 X 12행 이상
7언 배율 : 7자 X 12행 이상

 

평성과 측성

중국어에는 한국어와 달리 글자 하나마다 성조 聲調가 있다. 이것을 사성 四聲이라고 하며 평성 平聲, 상성 上聲, 거성 去聲, 입성 入聲의 사성이 있다. 특히, 한시에서는 평성은 그대로 평성으로 쓰고 상성과 거성 입성을 합쳐서 측성 仄聲이라고 해서 시의 운율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것은 우리나라 말에는 없는 것으로 중국어를 알지 못하면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한시를 지으려면 외워야 한다. 물론 중국 사람들은 그냥 들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거의 안다고 하는 것 같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사람들도 어떤 사람은 한글의 장단음을 구별해서 발음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장단구별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그냥 외워야 한다는 뜻이다.

 

도연명 陶淵明의 귀거래사 歸去來辭를 묘사한 그림. 도연명은 동진 시대의 시인이며 자는 원량 元亮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사성에 변화가 있어서 한시의 사성과는 다르다고 한다.
평성 : 1성과 2성으로 변화
상성 : 3성으로 변화
거성 : 4성으로 변화
입성 : 1성, 2성, 3성, 4성으로 변화

 

* 개인적으로는 나도 우리나라 말의 장단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긴 모음과 짧은 모음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해서 국어시험 볼 때 상당히 난감했었다. 그런데 한 친구 녀석은 따로 외우지 않았는데도 긴 모음과 짧은 모음을 척척 구별해 내는 것을 보고 경악했던 적이 있다.

 

소식 蘇軾. 북송 시대의 시인. 호는 동파 東坡居士. 소동파로 불리운다.

 

근체시의 규칙

 

1. 이사부동 二四不同, 이륙대 二六對, 일삼불론 一三(五)不論

각 구의 두 번째 글자와 네 번째 글자는 평측이 달라야 한다.
그리고 첫 글자와 세 번째 글자는 평측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
한 구에서 검은색 글자는 하나는 평성, 하나는 측성이어야 한다.
○●○○○●○
칠언시에서는 두 번째 글자와 네 번째 글자는 평측이 같아야 한다.
구 句 : 다섯 자 혹은 일곱 자로 이루어진 하나의 행을 말한다.

 

2. 출구 出句와 대구 對句

출구의 두 번째 글자와 대구의 두 번째 글자는 평측이 달라야 한다.
○●○○○
○●○○○
두개의 연이은 구에서 검은색 글자는 하나는 평성 하나는 측성이어야 한다. 이사부동의 규칙에 따라 네 번째 글자의 평측도 확정된다.
출구 出句 : 홀수 번째 구, 대구 對句 : 짝수 번째 구.

 

3. 압운 押韻

대구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평성자로 된 운자 韻字가 와야 한다.
○○○○○
○○○○●
○○○○○
○○○○●
검은 색의 글자는 항상 평성자여야 한다.
한자는 한 글자의 마지막 발음이 모두 106개이다. 106개라고 하면 너무도 많아서 어리둥절하겠지만 우리나라 말로 따지면 중성 + (종성)을 합친 것이기 때문에 106개가 된다. 즉, 이라고 쓰면 우리나라는 마지막 발음을 받침으로 이해하지만 중국어에서는 을 합쳐서 이라는 발음이 종성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마지막 발음이 같은 한자를 같은 운목 韻目에 속한다고 하고, 이 운목을 정리해 놓은 자전을 운서 韻書라고 한다.

 

이런 운자가 106개라는 것이고 남송 때의 유연 劉淵이라는 사람이 발음을 합쳐서 107개로 정리했는데, 이것이 후에 106개로 조정되었다. 이것을 평수운 平水韻이라고 한다. 마지막 이건 우리나라 사람 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도 외워야 하는 것이다. 평수운 중에 평성인 운은 30개이다. 즉, 짝수 번째 구인 대구의 마지막 글자는 평성으인 30개 글자의 운 중에서 사용해야 한다.
압운을 지키지 못했을 때 그 시는 낙운 落韻이라고 하며 근체시에서는 금기사항이다.

 

※운목의 예
동운 東韻 : 冬, 農, 攻, 宗
즉, 운목이란 우리 말로 따지면 중성과 종성이 같은 한자를 106개로 나누어서 묶어 놓은 것이다.

 

운목 일람표

 

4. 점 黏

두 번째 구와 세 번째 구의 평측은 같아야 한다.
○○○○○
○●○○○
○●○○○
○○○○○ 검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두 글자
黏은 찰지다, 붙다, 달라붙다라는 뜻이며, 점을 지키지 못하면 실점 失했다고 하고 낙운과 마찬가지로 근체시에서는 금기사항이다. 금기사항이라는 말은 낙운이나 실점을 하면 근체시가 아니라는 뜻이며, 조선시대에 이런 시를 지으면 개망신 당한다는 뜻이다.

 

5. 측성의 배치

세번 째 구의 마지막 단어는 반드시 측성을 써야 한다.
○○○○○
○○○○○
○○○○●
○○○○○ 검은 색 글자는 항상 측성이다.

 

6. 고측, 고평, 하삼련 금지

뒤의 세 글자 중 가운데 글자는 홀로 측성(고측)이나 평성(고평)이면 안되고, 뒤의 세 글자는 평측이 달라야 한다.

●를 측성이라고 하고, ○를 평성이라고 할 때,
○○●●● : 하삼측 下三仄 (△)
●●○○○ : 하삼평 下三平 (X)
●●○●○(△) : 고측 孤仄 (△)
○○●○● : 고평 孤平 (X)
이런 형태가 안된다는 것이다. (△)로 표시한 것은 금기까지는 아니지만 자주 쓰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하삼평의 경우에도 ●●●에 쓰인 글자가 모두 같은 사성(측성은 상성, 거성, 입성의 세 가지로 구성된 것을 기억하자)인 경우는 없었다.

 

위와 같이 근체시는 엄격한 규칙이 있기 때문에 첫 구의 두 번째 글자가 확정이 되면 시의 평측 배열이 대부분 정해진다. 따라서 첫 구의 두 번째 글자가 평성으로 시작하면 평기식 平起式이라고 하고 측성으로 시작하면 측기식 仄起式이라고 한다.

 

최치원 崔致遠. 고려 시대의 학자, 정치가, 시인. 호는 고운 孤雲. 계원필경 桂苑筆耕은 최치원의 시문집으로 당에서도 유명했었다고 한다.

 

이제 거의 끝났다. 그러면 위의 규칙을 적용해서 한시에서 평성과 측성이 어떻게 배열되는지 한 번 보자.

 

: 측성, : 평성, : 상관없음.
우선 제일 먼저 첫 글자를 선택해 보자. 이 시는 측기식으로 첫 번째 구의 두 번째 글자가 측성이다. 이사부동의 원칙에 의해서 다음 글자가 확정된다.




규칙을 적용해 보면 위와같이 빨간 색 글자의 평측은 고정이다. 평기식으로 글자를 선택해 보자.




마찬가지로 평기식에서도 위의 빨간 색 글자들은 고정이다. 그리고 첫 글자는 고평과 고측을 피하다 보면 대체로 두 번째 글자의 평측을 따라간다. 따라서 오언절구에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글자는 두 글자 정도인 것 같다. 칠언 시도 규칙을 따라가다 보면 측성이 고정되어 있는 부분이 생긴다. 측성의 배열을 정확하게 해야 제대로 된 한시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시를 지을 생각이 없고 감상만 하는데는 지금까지 알아 본 규칙은 크게 신경을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교차검증을 하다 보니 시간이 정리하는데 시간이 엄청나게 걸려 버려서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정리해 놓고 보니 한시를 읽을 기본적인 지식을 익힌 것 같아서 뿌듯하긴 하다.


※ 이 포스트는 <<한시의 세계>>(심경호 지음/문학동네)의 첫 장인 1.나도 한시를 지을 수 있을까?를 기본으로 참고하여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백과사전과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충, 정리하였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한시에 대해 썼던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으로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 한시에 대해서 이해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한시의 세계
국내도서
저자 : 심경호
출판 : 문학동네 200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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