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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김보영 박상준 심완선 / 한 번 읽고 두고두고 다시 읽을만한 SF 백과사전

 

나를 책벌레로 만든 SF

내가 처음 SF 소설을 읽은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인지 5학년 때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한참 책을 읽는데 재미가 붙어 있었고 집에 있는 책은 이미 여러 번 읽어서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 때 나의 눈은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세계동화전집, 위인전기, 어린이 백과사전과 이모가 던져주고 간 세계문학전집만 읽던 나에게 학교 도서관은 새로운 책들이 쌓여 있는 보물창고였다. 그리고 내 또래 많은 책벌레들이 비슷한 길을 걸었을 것 같은데, 추리소설과 SF 소설에 푹 빠져 버렸다. (무협지도 대표적인 장르소설인데 내가 무협지를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때였고 그나마도 김용이 쓴 소설만을 반복해서 읽었다.) 이때 알게 된 작가들이 셜롬 홈즈, 뤼팽, 아가사 크리스티, 에르큘 포와로같은 추리작가들과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H. G. 웰즈같은 SF 작가들이다.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작품들이 많은데 아시모프의 《강철도시》와 《불사판매 주식회사》가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다.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SF 소설을 읽었는데 하도 어릴 때 읽었던 책이라 다시 읽고 싶어도 내용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어 찾을 수도 없다. 어쨌든 내가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은 SF소설과 추리소설 덕분이고 지금도 SF소설은 꽤 많이 읽는 편이다.

 

그 후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다양한 책을 읽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다시 SF소설에 빠졌다. 정확히는 어릴 때 봤던 책을 다시 읽고 싶어서 SF를 찾다 다른 SF소설도 읽었다. 《강철도시》가 포함되어 있던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와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구매해서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아시모프의 팬이 되었다. 당시에 사놓았던 책 중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다시 출간되었지만 《로봇》 시리즈는 출간되지 않고 있다. 이 때 사놓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구하기 힘들 것이다.(중고 책이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SF소설은 책을 읽는 재미를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사모으는 책덕후 기질까지 나에게 선사했다. 우리나라에서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 장르에 속하는 SF소설은 있을 때 사놓지 않으면 절판되어 다시는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지금은 구하기 힘든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라든지 아시모프의 '우주 삼부작' 시리즈같은 책들이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다.)

 

왼쪽으로부터 저자인 김보영, 박상준, 심완선

신문연재분을 엮은 SF 안내서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는 한국일보에서 약 1년간 세 명의 SF 관련 전문가가 'SF 작가와 작품 소개' 에세이 50편을 엮어 펴낸 책이다.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우리나라 SF 소설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나마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세 저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좀 부끄럽기도 하다.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는 SF 독자라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 같은 작가 50명과 작품을 소개한다. 주로 소설가를 많이 소개하지만 소설가 뿐만 아니라 만화가와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도 소개한다. 당연하다. 새로운 세계는 소설가만이 창조해 내는 건 아니니까. 모두 읽고 보니 35 명 정도는 작품을 읽거나 본 적이 있고, 나머지는 생경하다. 혹은 작품을 알고는 있었지만 작가는 모르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읽을 책들이 잔뜩 남아 있다.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처럼 한 분야에 대해 정리해 놓은 책을 읽으면 내가 잘 몰랐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는 점이 가장 좋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접하지 못한 작가와 작품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아오른다.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책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아 놓는다. 혹여 절판이라도 된 책이 읽고 싶으면 짜증이 난다. 책구매 비용이 늘어나 몇달간 적자재정에 시달린다는 건 이런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지 않은 점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SF 소설 중에 하나다. 사진은 아마도 일라이저 베일리와 마지막으로 대화하기 전의 지스카드인 듯.

전문가가 정성들여 쓴 소개서

세 저자가 번갈아 가변서 굉장히 읽기 편하게 SF 저자와 작품에 대해 설명을 했다. 작가들의 삶을 소개하는 것도 좋고 작가들의 대표작이 좁게는 SF문학계, 넓게는 사회와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고 영향을 끼쳤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특히 신문 칼럼의 한 코너였던만큼 각 챕터가 글이 깔끔하고 군더더기없는 것이 마음에 든다. 많이 제거했다고는 하지만 신문 연재물인만큼 시의성 있는 주제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흥미롭다. 연재가 끝난지 약 2년 정도 지났으니 상황은 많이 바뀌었으나 그 때의 상황을 상기하면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SF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한 번 읽고 이해한 후에 이 책을 책장에 꽂아 놓을 수는 없다. 이제 이 책 속에 소개된 책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읽는 수고를 해야겠다. 갑자기 읽어야 할 책의 숫자가 확 늘어나긴 했어도 상관없다. 차근차근 거장들의 상상력을 더듬어 가는 즐거움을 누릴 생각을 하니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들을 생각하면 몹시 절망스럽기도 하다.

 

최근에 가장 인상깊게 읽은 중국 작가 류츠신의 《삼체》의 영화 포스터.

★★★★☆

SF독자라면 한 번 읽고 눈에 잘띄는 곳에 두고 틈틈히 읽을 책이다. 설명도 깔끔하고 50명의 작가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 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부담도 없다. 백과사전처럼 두고 읽어도 될 듯하다.

 

특이하게 글자 단위가 아니라 단어 단위로 줄바꿈을 한다. 그동안 시집 말고 단어 단위로 줄바꿈을 한 책을 본 적이 있나? 큰 문제는 아니지만 괜히 거슬렸다. 사진 설명을 사진 왼쪽에 세로로 써놓아서 책을 읽다가 90도로 돌려가며 읽어야 해서 불편하다. 이건 또 왜 이렇게 했을까? 편집이 좀 이상하다.

 

SF의 전체 역사는 아니겠지만 전반적인 경향과 알아야 할 작가들이 총망라되었다. SF 팬과 관심있는 독자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국내도서
저자 : 김보영,박상준,심완선
출판 : 돌베개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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