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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과학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 쉬움과 어려움이 중첩되어 있는 양자론 교양서

Q : 원자는 어디 있나요?
A : 모릅니다. 질문이 틀렸어요.
Q : 양자 역학은 뭐하는 학문인가요?
A : 원자를 설명하죠.
Q : 그럼 원자는 어디 있나요?
A : 모른다니까요!
Q : 원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원자를 설명한다고요?
A : 질문이 틀렸다니까요!
<김상욱의 양자 공부> P. 263

양자론, 현대 물리학의 끝판왕

처음 상대성이론을 들여다 볼 때,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관성계에서 물체는 동일한 물리법칙을 따르고, 빛의 속도는 일정하니까 시간과 공간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특수 상대성 이론). 중력하고 가속도는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거라서 중력이 큰 물체 주변은 시간과 공간이 변형된다(일반 상대성 이론). 실제 생활에서 볼 수 없는 현상들이니 이해하기 힘들었고, 어떻게 겨우겨우 현상만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양자론을 들여다 본다. 전자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야. 빛은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해. 왼쪽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오른쪽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 슈뢰딩거가 아무 죄도 없는 불쌍한 고양이를 죽였어. 슈뢰딩거 나쁜 놈! 얼마나 빠른지 보려고 했더니 어디있는지를 모르겠어. 눈을 부릅뜨고 어디있는지 봤더니 속도가 안나와. 관측이 되는 순간 우주가 두 개로 갈라져. 상대성이론은 갖다 대지도 못한다. 첩첩산중이다.

 

상대성이론은 너무나 빠른 세계를 설명하고 큰 중량을 설명하려다 보니 일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양자론은 너무 작은 세계를 설명하려다 보니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로서는 상대성이론보다 양자론이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렵다. <김상욱의 양자 공부>는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까? 나는 문과생이다.

 

이 남자가 어느 쪽 문을 통과하고 있는 걸까? 왼쪽? 오른쪽? 안 보면 몰래 아무 쪽으로나 들어간다. 보면 딱 걸린다. 관측을 하기 전에는 확률적으로 존재하지만 관측이 되는 순간, 어느쪽 문인지 확정이 된다. 이게 양자붕괴이다. 그런데 책 마지막에 나오는 지연된 선택(delayed choice) 이론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딱 그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책속 삽화. 삽화도 마음에 든다.

서론 따위 필요없지. 훅 들어 온다.

양자론을 보려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게 될까? 보통은 원자론부터 시작할 것 같다. 아니면 빛의 이중성, 흑체복사부터 시작해서 에너지의 불연속성부터 설명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김상욱 교수님은 산뜻하게 뛰어넘어가 버리신다. 책의 1장은 거시세계에서 양자론이 적용될 때 어떤 모습일지를 비유로 설명해 준다. 이제 슬슬 서론을 꺼내야 할 시점인 2장에서 바로 이중슬릿 실험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양자의 중첩'에 대해 설명을 한다. 최소한 뉴턴부터는 시작해야 하는 거 아냐? 원자모형 정도는 한 번 설명해 주고 가는 거 아니었어? 그런 거 없다. 양자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가차없이 치고 들어 온다.

 

생각해 보니, 어차피 빛의 이중성이든 흑체복사든 뭐든 서론을 길게 한다고 해서 양자가 이해되는 건 아니다. 그 단계 들어가면 어차피 헷갈린다. 구태여 '양자공부'라고 떡하니 제목을 붙여 놓은 책을 읽을 사람은 양자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본론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도 좋다. 가장 기본이 되는 양자의 성질을 제시해 놓고 양자론이 걸어 온 역사를 짚어 나가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이해해 놓고 지나가면 훨씬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양자론(양자역학)은 가장 작은 세계를 다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일상적인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양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 인간의 언어가 양자를 설명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건 너무 철학적이잖아!

일상적인 언어로 쉽게 풀어 나가는 안내서

저자인 김상욱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포항공대, 카이스트,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전에 저자의 책을 본 적도 없고, 다른 매체로 강의를 들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좀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책이 굉장히 친절하다.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책보다 양자론을 친근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글을 썼다. 일상적인 언어로 쉽게 풀어나가려고 하면서 예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그동안 읽었던 다른 책들에 비해서 확실히 부담이 덜하다. 처음 몇 장을 읽는 동안은 이 정도면 충분히 해 볼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양자론이 이제야 임자를 만났다.

 

양자론은 머리는 아프지만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면 물질의 근원을 맛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기분만 좋다.

쉽다고 쉬운게 아니지. 양자론이니까..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나의 모습은 4장, 5장을 지나간면서 의기소침해진다. 드디어 양자론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래도 어떻게 따라가다가 길을 잃기 시작한다. 결 어긋남, 중첩, 얽힘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했다고 억지로 우기고 넘어가 본다. 그래도 많이 들어 본 용어니까. 카오스하고 프랙탈이 양자론과 연관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만델브로트 집합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뒤로 갈수록 이해되지 않는 개념들이 나온다. 이전에 이해한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들도 다시 보니 모르겠다.

 

어떻게든 친절하게 끌고 나가지만 만만하지 않다. 그게 양자론이니까. 전세계 물리학의 천재들을 모두 모아도 제대로 양자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김상욱 교수는 친절하고 재미있게 책을 썼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책 중에 가장 쉽게 썼다. 하지만 어렵다. 그게 양자론이고, 난 천재가 아니다.

 

솔베이 회의는 벨기에의 사업가 에른스트 솔베이가 개회한 세계 물리학, 화학 학회이다. 3년마다 열리며, 현재도 계속해서 개최되고 있다. 위의 사진은 1927년에 개최된 제5차 솔베이 회의에 참석한 물리학자들의 사진인데, 저 안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17명이 나온다. 맨 앞줄 가운데 자리는 당시 물리학계의 수퍼스타였던 아인슈타인이 차지했고, 양자역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닐스 보어는 두번째 줄 오른쪽 끝에 앉아 있다. 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는 양자론에 대해서 치열한 토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자역학을 사랑하는 물리학 교수의 프로포즈

책을 읽는 내내 양자론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쉽게 설명해서 한 명이라도 더 양자론의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굳이 알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알게 되면 이것만큼 좋은 게 없을 거라고 강변하는 것 같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양자론이 뭔지 당연히 알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물리학자의 이런 프로포즈라면 한 번쯤은 받아 들여도 좋을 것 같다.

 

2015년에 양자얽힘이 실재한다는 실험결과를 네이쳐 지에 발표한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의 바스 헨슨(엔지니어)과 로널드 헨슨(교수). 검증을 통과해서 공식적으로 인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양자얽힘은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양자얽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위에서 밝힌대로 나는 문과생이기 때문에 이과생들이 양자론을 실제로 공부하는지 어떤지 잘 모른다. 나보다 더 잘아는 사람들일테니 추천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하지만 처음 양자론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교양 수준에서 양자론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기분좋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양자론에 대해서 띄엄띄엄 알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양자론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다. 일단 기본 개념과 흐름을 알아 두고, 이후에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보충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양자론에 관심이 없다면 상관없지만 교양 삼아서 한 권 읽어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