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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하룬 알 라시드 Harun ar-Rashid / 천일야화의 칼리프

천일야화에 나오는 개그 콤비

하룬 알 라시드는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읽다 보면 굉장히 자주 나오는 왕이다. 왕이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칼리프 Caliph(혹은 칼리파)라고 하는 것이 맞다. 항상 대재상인 자파르와 사형집행인인 마스루르를 데리고 다닌다. 천일야화에서는 하룬 알 라시드를 공장히 호기심이 많으면서, 공평하고, 자신의 과오도 바로잡을 줄 아는 현명한 왕으로 묘사한다. 특히, 자파르와 함께 평복을 하고 민정시찰을 나갔다가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엉뚱한 일에 휘말려서 얘기를 진행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걸핏하면 자파르의 집안을 풍비박산내겠다고 협박하며, 사건의 진상을 알아 오라고 시킨다. 그러면 또 자파르는 투덜대면서 결국 우연히든 어떻게든 진상을 알게 되는 것이 전형적인 진행 방식이다. 또, 하룬 알 라시드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등장인물들이 얘기를 풀어 나갈 때, '하룬 알 라시드 치세 시절에~'하는 식으로 시작을 하는 것을 보면 칼리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왕이었던 것 같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하룬 알라 시드로 읽어서 이름에 신의 이름이 들어간 줄 알았는데 오해였다.

 

샤를 마뉴가 보낸 사절을 맞이하는 하룬 알 라쉬드.

압바스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는 압바스 왕조의 3대 칼리프인 알 마디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특이하게도 예멘 출신의 노예인 알 하이주란이다. 천일야화를 보다 보면 노예가 왕의 부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등장하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는데, 거의 그런 여자들을 보면 공주나 귀족의 딸 출신인 경우가 많다. 알 하이주란 역시 피지배지역이었던 예멘의 고위층의 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알 마디에게는 큰 아들인 알 하디가 있었고 당연히 다음 칼리프 자리는 알 마디에게 돌아 가게 되어 있었다.

 

하룬 알 라쉬드가 새겨져 있는 (혹은 그 시대의) 동전.

 

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르다

하룬 알 라시드의 어머니는 노예 출신이긴 했지만 상당히 정치력이 강한 인물이었다. 당시에 상당한 세력을 지니고 있던 바르마크 가문의 야히아라는 인물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하룬 알 라시드를 보좌하게 했다. 야히아의 도움으로 10대에 군사적인 성공을 이룬 하룬 알 라시드는 콘스탄티노플과 평화조약을 맺었고, 이 때에 알 라시드(정의로운 자)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하룬의 뒤에 붙이게 된다. 선왕인 알 마디가 죽기전부터 어머니인 알 하이주라는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4대 칼리프의 자리는 형인 알 하디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이런 권력투쟁에서는 항상 그렇듯이 알 하디는 786년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고 왕위는 하룬 알 라시드가 차지하게 된다. 물론 당시부터 알 하디의 죽음에 알 마이주라가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 천일야화에서 유명한 소품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딱 한 번 나올 뿐이고, 큰 활약을 하지도 않는다.

 

바르마크 가문과의 공존, 그리고 파국

766년(혹은 763년)에 태어난 하룬 알 라시드는 786년에 칼리프가 되었고, 지지자이자 스승이었던 야히아는 재상이 된다. 그리고 야히아의 두 아들 알파들과 자파르도 행정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중 자파르가 천일야화에 함께 등장하며 왕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그 자파르다. 자파르는 실제로도 하룬 알 라시드의 신하이면서 친구이기도 했는데, 천일야화에서는 가끔은 둘이서 만담을 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개그를 선보이기도 한다. 소설에서 보면 하룬 알 라시드는 자파르에게 어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그에 따르지 않으면 일족을 멸망시키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협박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자파르가 속한 바르마크 가문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풍비박산을 내버린다. 결국은 소설대로 된 것이다.

 

이 양반이 자파르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알라딘을 동굴에 가두는 악당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현명한 재상이었다.

 

제국분열의 단초를 제공한 왕

하룬 알 라시드는 말년에 이슬람 제국의 서부지역은 큰 아들인 알 아민에게 맡기고, 동부지역은 작은 아들인 알 마문에게 맡기게 되는데 사후 형제간에 전쟁이 지게 되고 알 마문이 승리를 하기는 했지만 시아파에게 이집트를 빼앗겨 파티마 왕조를 탄생하게 하는 등 사후에 문제가 많이 생겼다. 하룬 알 라시드는 808년에 이란 지역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출정을 했다가 병으로 인해 죽게 된다.

 

하룬 알 라시드는 천일 야화의 등장인물이다.

 

상반된 평가

하룬 알 라시드가 다스리던 시대는 이슬람 제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였고, 칼리프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칼리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룬 알 라시드는 현명한 왕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인품자체가 훌륭하지 않고, 대단한 업적보다는 당시에 이슬람 세계가 극단적으로 사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유명할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특히, 천일야화에 매력적이고 현명한 왕으로 그려진 영향이 클 뿐이라고도 한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어쨌든 익숙하지 않은 이슬람의 군주 중에 기억해 둘만한 칼리프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룬 알 라시드의 이름은 정확하게는 Hārūn ar-Rashīd라고 써야 한다. 하룬 알 라쉬드라고도 하며 영어로 쓸 때에 Harun al-Rashid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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