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이해하는 도구, 게임이론
게임이론이라는 용어를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제로섬 게임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서 어떤 뜻인지 찾아보다가 관심을 두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죄수의 딜레마를 처음 안 후, 흥미롭게 생각해서 찾아봤을 수도 있다.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게임이론은 행동경제학과 함께 내가 제일 흥미를 두고 있는 경제학, 또는 사회학 분야의 이론이다.
게임이론은 간단히 '상호적 의사결정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가깝게는 가족, 친구 관계로부터 시작해 모든 인간관계에서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정을 내리고 나면 만족할 수도 있고 후회할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은 당연히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이 결정을 나혼자 한다면 의사결정과 결과는 굉장히 단순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하지만 결정을 나혼자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상대방 한 명, 또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결정을 한다면 경우의 수도 많아지고 결과에 대한 예측도 어려워 진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머리를 엄청나게 굴려야 할 수도 있다.
게임이론은 예측하기 힘든 의사결정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단순화한 모델을 만들어 확인하고 그 결과를 경제학, 사회학을 의사결정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많은 학문에 기초 이론을 제공한다. 단순화한 모델은 그동안 많이 개발되었으며, 흔히 거론되는 게임모델 중에는 죄수의 게임, 최후통첩게임 등이 있다. 《n분의1의 함정》은 게임이론, 또는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등에서 시행되었던 게임들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책이다.
게임론의 모든 것?(X), 게임의 모든 것과 +α
게임이론 전반을 다룬 책을 읽으면 가장 기본적인 게임부터 시작해서 점점 어려운 게임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아무래도 개론서의 첫부분은 자명하고 뒷부분은 너무 어려워서 책을 읽어도 크게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 반면에 《n분의1의 함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로운 게임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따로 보고 생각했던 많은 게임들을 총정리해서 읽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책 표지에 나와 있는 '게임 이론의 모든 것'보다는 '게임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고 읽는 편이 낫다.
더욱이 이 책은 무척 쉽다. 각종 유명한 게임의 예를 들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간단한 에세이를 읽듯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이론 교양서에서 쉽다는 말은 항상 양면성을 지니게 마련인데 《n분의1의 함정》 역시 마찬가지다. 읽기 편하긴 하지만 깊숙히 들어가지는 않는다. 가장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도 그렇고 발전 형태인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역시 조금 다루다 말았다. 가장 관심이 많으면서 이 책을 산 이유이기도 한 '최후 통첩 게임'도 가장 기본적인 형태만 다루고 확장된 형태는 나오지 않아서 아쉬움은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이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실제로는 게임이론이라고 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실험 혹은 패러독스들이 많이 담긴 건 이 책의 번잡스러운 장점이라고 할 만하다. 패러독스 관련 책에서나 볼 법한 '뉴컴의 파라독스', '기호 이론'으로 유명한 '톰슨 가젤의 높이뛰기' 그외에 경매, 통계, 치킨게임 등 책의 제목과는 좀 거리가 있어보이는 내용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책의 원제가 '검투사, 해적 그리고 신뢰게임'인 것을 보면 원래 책을 쓴 것은 게임이론에만 국한되어 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좋을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불만을 초래할만큼 번잡한 책이다. 나는 좋은 의미에서 각종 학문에서 시행한 실험, 게임, 관찰 들을 꽤 많이 모아 놓은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
번역도 잘되어 있고 이해하기도 쉽다. 읽다보면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써먹을만한 인사이트도 많이 제공한다. 이런 분야에 대해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책을 통해 다양한 게임과 패러독스를 익히고 다른 책을 읽으면서 확장하기에 좋다. 게임이론, 행동경제학 등에 관심이 있어서 꾸준히 책을 읽어온 사람에게 《n분의1의 함정》은 조금 부족할 수는 있다. 그래도 총망라해서 읽어 보는 의미는 있을 것 같다.
제목의 《n분의1의 함정》은 모임에서 식비를 똑같이 나누어 낼 때 발생하는 딜레마를 의미한다. 책의 첫번째 장에서 설명하는데 모임에서 식비를 n분의1로 할 때 남들보다 더 먹으려고 마구 시켜대던 미련스런 나의 모습(물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이 떠올라 뜨끔했다.
대체로 추천하지만 게임이론이나 행동경제학 분야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망설여진다.
|
'독서 >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양말은 항상 한 짝만 없어질까? Irrationally Yours》 댄 애리얼리 Dan Ariely / 인간을 보는 통찰력과 위트가 넘치는 행동경제학자의 상담 (0) | 2020.07.30 |
---|---|
《대략살상 수학무기》 캐시 오닐 / 인간을 줄세우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과 AI의 파괴력 (0) | 2020.03.21 |
<협력의 진화> 로버트 액설로드 Robert Axelrod / 이기적 개인의 팃포탯 전략 (0) | 2019.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