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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단체

템플기사단 Templar / 성전의 수호자? 악마의 숭배자?

흰색의 옷과 방패, 붉은 색의 십자가는 템플기사단의 상징이다. 템플기사단은 가장 인원이 많을 때는 2만여명에 달했다.

 

템플기사단의 창설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1차 십자군 전쟁은 1095년에서 1099년 사이에 벌어졌다. 전쟁이 끝났을 때는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졌다. 하지만 십자군은 모든 지역을 장악하지는 못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비롯하여 몇 군데의 요새만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지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할 때에 이슬람의 습격을 많이 받았다. 템플기사단은 성지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1120년경 위그 드 파앵 Hugues de Payens과 그의 동료 8명이 창설하였고, 정식 명칭은 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기사 Poor Knights of Christ and of the Temple of Solomon들이다.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보두앵 2세는 그들을 위해서 솔로몬의 신전 옆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고, 그로 인해 템플기사단(성전기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다.

 

템플기사단의 창설자인 위그 드 파앵 Hugues de payens (1070 ~ 1136)

 

세력 확장

템플기사단은 청빈맹세를 하였지만, 성지순례자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서 급속하게 부유해 졌으며, 인원도 늘어나면서 순식간에 세가 확장됐다. 게다가 1139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가 그들을 교황 직속 조직으로 만들었고, 기사단 소유의 재산에 대해 해당 지역의 주교에게 지배를 받지 않는 특권까지 누리게 된다. 템플기사단은 붉은 십자가로 장식된 하얀 옷을 입고 이교도와 싸웠으며, 이에 감동한 각국의 왕과 귀족들도 많은 재물을 기부했다. 또한 성지와 유럽을 연결하는 효율적인 운반조직으로 은행의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1200년대 말에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각국에 지부를 두게 되었다.

 

필리프 4세 Philippe IV (1268 ~ 1314) 프랑스의 왕, 외모가 잘생겨서 미남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왕위에 있는 동안 많은 전쟁을 벌여서 재정이 부족하자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였다. 교황청과 사이가 좋지 않아 프랑스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5세를 세우고 프로방스 지방의 아비뇽으로 옮긴 후 사실상 지배하는 아비뇽 유수를 단행하였다.

 

템플기사단의 몰락

승승장구하던 템플기사단은 1300년대에 이르러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당시 빈번한 전쟁으로 인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프랑스의 국왕인 필리프4세는 가혹한 정책을 펼치고 그 결과 국민들의 폭동이 일어난다. 이때 필리프 4세는 템플기사단의 본부로 피신했는데 이 때 템플기사단의 막대한 재산에 대해서 알게 된다. 후에 아비뇽 유수에 의해서 교황 클레멘스5세를 아비뇽에 가두고 감시하면서 프랑스 교회가 모은 십일조를 자신이 보유하게 된다. 그리고 1307년에 10월 13일 아침에 필리프 4세는 템플기사단을 이단으로 매도하면서 체포명령을 내렸고, 기사단의 모든 재산을 몰수한다. 그리고 강한 고문을 행사하여 기사들이 마법, 십자가 훼손, 동성애, 악마숭배 등을 자백하게 하여 화형에 처하고 만다.

 

자크 드 몰레 Jacques de molay (1243 ~1314) 템플기사단의 마지막 단장. 죽기 전에 필리프 4세와 클레멘스 5세의 죽음을 예언했다.

 

템플기사단의 멸망

이후 템플기사단의 세력은 급속히 약화되고 1314년 마지막 단장인 자크 드 몰레가 기둥에 묶여 화형당함으로써 역사에서 그 자취를 감추고 만다. 자크 드 몰레는 죽을 때 필리프 4세와 클레멘스 5세가 올해 안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공교롭게도 클레멘스 5세는 만성질환으로 인해 사망하고 8개월 후에는 필리프 4세가 사냥을 하다가 낙마하여 며칠 후에 45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템플기사단의 잔당으로부터 프리메이슨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왔으며 지금도 세계정부를 조종하며 세계권력을 장악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템플기사단이 정말 악마를 숭배하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필리프 4세가 템플기사단을 고문하여 억지로 자백하게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템플기사단의 내부에는 엄격한 계율이 있었고 비밀의식이 있었던 것도 확실한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 소설 <<다빈치코드>>의 로버트 랭던은 이 그림을 소재로 하여 템플기사단에 관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템플기사단이 건립한 성마리아 대성당은 사실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에게 봉헌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것은 성모와 대비해서 흑성모 숭배라고 하며 템플기사단은 성모 마리아가 아닌 막달라 마리아를 숭배했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또한 템플기사단에 입단하는 사람은 입단식을 할 때에 그리스도를 거부하도록 명을 받고 십자가에 침을 뱉는 의식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교회의 한 방에 들어가 옷을 벗은 후 몸을 청결히 하고 바포메트라는 기이한 상에 절을 한 후 장로에게 입맞춤을 하는데 위치가 배와 배꼽, 성기에도 한다고 한다.

 

템플기사단이 숭배했다고 하는 악마, 바포메트 Baphomet

 

필리프 4세에 의해 탄압을 받은 후에 템플기사단의 기사들은 유럽 각지로 흩어지고 다른 기사단에 입단을 한다. 특히 당시 스코틀랜드는 왕위 후보자였던 로버트 더 브루스가 교회 내에서 암살을 한 죄로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하였는데 많은 템플기사단이 브루스의 편에 서서 영국군에 대항해 전투를 벌였고 왕위에 오른 브루스는 일시적으로 템플기사단의 수장이 된다. 하지만 후에 교황의 파문에서 풀려난 이후 템플기사단은 역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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