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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클래식

<밤의 여왕의 아리아 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Florence Foster Jenkins / 사상 최악의 소프라노

모차르트. 클래식 음악 역사상 최고의 천재. 내가 클래식 음악 뿐만 아니라 음악 전반에 빠진건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들은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 덕분이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마지막 오페라이다. 죽기 두 달 전에 완성을 했다. 내가 어릴 때는 마술피리가 아니라 마적 魔笛이라고 했다. 한자로 보면 마술피리와 같은 뜻이긴 하지만 나는 마적 馬賊이라고 이해를 해서 내용을 모를 때는 말을 타고 다니는 도둑떼들을 말하는 줄 알았고, 어째서 도둑떼들 틈에서 여왕이 노래를 부를까 하고 궁금해 했었다.

마술피리는 대사를 보면 당시에 유행하던 이태리어로 쓰인 오페라가 아니라 독일어로 쓰인 오페라이다. 그래서 곡들을 들어 보면 발음이 좀 툭툭 끊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확실히 이태리어는 성악에 최적화된 언어인 것 같다. 실제로 노래를 불러 봐도 독일어는 이태리어에 비해서 발음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진다.

 

담라우 Damrau의 밤의 여왕의 아리아도 최고의 연주 중에 하나로 꼽힌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

마술피리는 모차르트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중에 하나이기도 한데, 유명한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그 인기의 원인이다. 그러데 밤의 여왕의 아리아라고 알고 있는 곡의 정확한 곡명은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 오르고 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이다. 오페라 중에서 밤의 여왕은 아리아를 한 곡만 부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 곡도 밤의 여왕이 부르는 두 번째 아리아이다. 하지만 워낙 이 곡이 유명해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라고 하면 이 곡을 말한다.

이 곡은 소프라노 중에서도 고음에 탁월하면서 초절정의 기교를 지닌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Lyric Coloratura Soprano가 부르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듣기만 해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고음과 빠른 진행 가운데서도 정확한 음을 벗어나기만 하면 금세 티가 나기 때문에 잘못하면 소프라노로서 연주 경력에 심각한 오점을 남길 수 있다. 풍문처럼 세계에서 단 세 명만이 부를 수 있는 아리아는 절대 아니지만 이 곡을 잘 부르는 소프라노가 세계적으로 그다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 - Florence Foster Jenkins 들어 보면 알겠지만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다. 그냥 노래를 부르는 능력 자체가 없다. 고음 뿐만이 아니라 저음도 전혀 정돈이 되지 않았다. 음반이 오래 돼서 음질이 좋지 않은 것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의 젠킨스 여사님은 그냥 음치다.

팝페라 가수 키메라

이 유명한 아리아를 처음 들은 건, 굉장히 어릴 때 얼핏 들었던 키메라 Kimera의 노래였다. 지금은 어렴풋하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굉장히 화려하고 키치스러운 분장을 한 여자가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이 어릴 때에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어차피 그때나 지금이나 클래식이든 오페라가 인기있는 음악장르는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이 키메라를 통해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처음 듣지 않았았을까 싶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그냥 클래식에 문외한이었다.

팝페라 Popera 팝 pop 오페라 opera가 결합하여 생긴 크로스오버 음악이다. 지금은 팝페라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기도 하지만 키메라가 활동하던 1980년대만 해도 팝페라라는 장르가 익숙한 장르는 아니었다. 뮤직비디오는 지금 보면 상당히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음악실력도 뛰어나고 퍼포먼스도 좋아서 지금 봐도 멋지다.

 

키메라. 이 분이 우리나라에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널리 알리신 일등공신이다.

천재 성악가 조수미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천재라고 불리우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조수미의 곡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조수미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면 흔히 말하는 국뽕 때문에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사람을 치켜세우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내가 볼 때는 조수미는 정말 하늘이 내린 천재다. 물론 세계에서 원탑 성악가가 아닐 수는 있어도 톱클래스에 드는 성악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조수미만큼 완벽한 테크닉으로 연주하는 여자 성악가는 굉장히 찾아 보기 힘들다. 조수미의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왠지 좀 감정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음정이 흔들릴 것 같은 불안감을 지우고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라고 생각한다.

조수미. 실력에 대해선 두말할 나위 없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조수미의 연주가 불안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연주라면 연주를 듣는 내내 불안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는 최악의 연주라는 악명은 젠킨스에게 돌아간다. 젠킨스의 연주는 굉장히 오래전에 라디오에서 웃으라고 틀어준 것을 처음 들은 것 같은데, 정말 어떻게 이런 녹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는지 놀라면서 들었다. 후에 자료를 이것저것 찾아 본 후에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여자의 극악한 취미 정도로 여겼다. 그리고 이 곡의 제목처럼 당시의 음악평론가들에게 '타오르는 지옥의 복수심'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젠킨스 여사를 옹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날개까지 달린 센스는 뭐라 할 말이 없다. Glory 옆에 물음표 네 개는 음반사의 개그.

사상 최악의 밤의 여왕의 아리아

곡을 들어 보면 알겠지만 곡 전체를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은 기교가 필요한 곳에서는 음을 감당못해서 허둥지둥대는 꼴이 참 우습기도 하다. 젠킨스는 그냥 노래를 못하는게 아니다. 조수미가 타고난 천재라고 하면, 젠킨스는 타고난 음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음반이 메이저 음반사인 RCA에서 정식으로 만든 음반이라는 것이고 그의 카네기홀 공연은 매진을 이뤘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른 의미에서 인기가 많았던 것이겠지만, 왠지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연주자인 것 같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고 같은 곡을 다른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음반도 사서 듣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다른 연주자들의 곡들이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지 잘 모르겠다. 커피도 그렇고 와인도 마찬가지다. 그냥 들어서 즐겁고 이게 어떤 곡인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미세한 차이를 엄청나게 대단한 차이를 두고 설명을 한다. 그런 평론가들의 평가 때문에 일반인들이 클래식을 더 어렵게 생각하고 접근하기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을 전문가들이 깎아 내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아무 생각없이 당당하게 즐긴다는 점에서 보면 젠킨스는 현명하면서도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

팬클럽도 있었다. 그들 앞에서 연주 중인 젠킨스 여사.

영화도 나왔었다

젠킨스에 관한 영화가 나왔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생각나는대로 밤의 여왕의 아리아와 젠킨스에 대한 얘기를 풀어 보았다. 요새 너무 움직이기가 귀찮아서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한번쯤 보고 싶은 영화이기는 하다. 대체로 음악에 관한 영화는 거의 찾아서 보는 편인데, 최근에는 그러질 못하고 있다. 위플래쉬 이후에는 영화를 거의 안 봤으니 꽤 오래전 얘기.

괜찮은 출연진으로 기대가 되기는 하지만 평이 썩 좋지는 않다.


젠킨스 여사에 대한 존경심으로 음반을 사고 싶기는 하지만 물건너 오는데 2주나 걸리는 것 같으니 생각 좀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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